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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11.14 17:09:16
  • 최종수정2022.11.14 17:09:16

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

경북 봉화의 광부 생환 사건으로 인해 '커피믹스 열풍'이 일 뻔했다. "광부들이 커피믹스를 밥처럼 먹으면서 죽음을 이겨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커피믹스 예찬론'이 번졌다.

대체로 "커피믹스가 그렇게 몸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는데, 내용이 궁색하다. 아무리 미화해도 커피믹스가 몸에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사정이다 보니 '커피믹스 바람'은 찻잔 속에서 이내 사그라지는 모습이다. 홍보의 호기로 활용할 만했던 커피믹스 제조사들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차분하다.

왜 그랬을까? "커피믹스는 효능을 구체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유행이나 근사한 광고 이미지 속에서 조용히 묻어가는 상품이라는 수준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커피믹스의 가치는 "간편한 방법으로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 이상이 되긴 힘들다. 스페셜티 커피의 문화 속에서 산지에 따른 향미를 즐기고, 건강에 유익한 성분들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로스팅과 추출 기법까지 가리는 소비가 뚜렷해지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커피믹스는 우유 대신 상대적으로 싼 식물성 기름을 쓰기 때문에 가루 상태로 봉지에 담을 수 있도록 수소경화처리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몸에 좋지 않은 트랜스지방이 만들어진다는 우려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식물성 크림은 비록 건강문제를 유발하는 포화지방이지만 탄소배열이 8개 미만인 단쇄지방산이기 때문에 체내 흡수가 잘 된다"는 주장도 이번에 또 퍼졌다. 원두 커피를 마시면 포화지방산 걱정을 아예 하지 않아도 된다. "과다하게 식물성 크림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크게 탈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긍정적일 수 없다. 커피믹스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오히려 "적절하게 마시면 몸에 좋은 것이냐"는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크림에 들어 있는 카세인나트륨을 둘러싼 유해성 논란은 무해한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결국 믹스커피에 천연카세인을 넣는 것으로 바뀌었다. 업체는 "카세인나트륨이 우유단백질의 공급원으로 기능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 우려를 없애기 위해 천연카세인으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커피믹스의 유익한 점을 알리고 싶다면, 인공첨가물을 넣는 커피믹스들끼리 비교할 게 아니라 원두커피와 견줘야 한다.

12g짜리 한 봉지에 절반인 6g이 설탕이라는 점에 대해 쌀밥 2숟가락을 먹어도 칼로리가 비슷하다는 식으로 피해가는 것 역시 비겁하다. 믹스커피에 들어있는 설탕은 정제당으로 흡수 속도가 빠르다.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혈액에 녹아들기 때문에 당뇨병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를 팔면서 핵심 원료인 커피 생두의 산지나 품질에 대해 밝히지 않는 것은 기본부터 커피답지 못하다. 커피믹스의 향과 맛을 강조하는 광고들이 즐비한데, 도대체 그 커피들은 어느 산지의 무슨 품종을, 그리고 언제 수확한 것을 가지고 만드는 것일까? 포장을 봐도 도무지 알 수 없다.

"커피믹스를 한국이 세계 처음으로 발명했다"며 애국심에 호소하기에도 민망하다. 인류 최초의 커피믹스는 1969년부터 미국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우주공간에서 커피 음용에 대한 최초의 실험은 1969년 7월 16일 미국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아폴로 11호 발사와 함께 시작됐다. 아폴로 11호의 사령선인 컬럼비아호가 다시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8일 3시간 동안 커피는 암스트롱, 콜린스, 버즈 올드린 곁을 지켜 줬다. 특히 7월 20일 달 착륙선인 이글호에 실려 달에 착륙하기까지 했다. 이를 7년 뒤인 1976년 12월 한국의 동서식품이 1인분 포장형의 믹스커피로 만들어 상품화한 것이다. 커피믹스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아니라 대량생산한 것이 우리의 실적이다. 물론 이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발 빠른 대중화는 발명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 문제는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말하는 것이다. 커피믹스에 대한 과다한 거품은 빼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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