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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외래교수

세상이 요즘처럼 살기 힘들기는 소크라테스(BC 470~BC 399)가 살아간 시대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 통에 태어났다. 스물 두 살 때쯤 양국이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아테네에는 민주정치의 꽃을 피우는 듯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서른 여덟 살 즈음 그리스는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으로 나뉘어 27년간의 내전에 휩싸였다. 아테네 시민에게 지워진 국방의무에 따라 그는 펠로폰네소스전쟁 중에 3차례 보병으로 징집됐다.

소크라테스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전투에 나가 20대 병사들 보다 더 오래 행진하고 맨발로 얼음 위를 걷는 등 당찬 모습을 보였다. 음식과 성욕에 대한 엄격한 절제로도 칭송을 받았는데, 특히 부상당한 알키비아데스 장군을 구출한 용맹과 초인적 의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목숨이 위협받는 전쟁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실천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 와중에 전염병이 창궐해 아테네시민의 3분의 1이 몰살당하는 지옥을 겪어야 했다. 역병을 앓았지만 다행히 살아남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당시 참혹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평소 건강했던 사람들도 갑자기 먼저 머리에 고열을 느끼고 눈에 염증이 생겨 충혈됐다. 구강 내에서 혀와 목구멍에 출혈증상이 나타나 호흡이 고르지 못하고 이상한 악취도 났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 뒤에 독한 기침과 함께 통증이 가슴으로 내려온다."

2500년전 전쟁과 전염병을 겪은 소크라테스의 삶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것은 역병이 가져온 변화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증언이다.

"감염을 두려워해 환자가 나온 집은 간호사도 없이 병자 홀로 남아 죽어갔다. 전염병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이젠 병에 걸려도 죽는 일이 없으리라고 몽상하고 부끄러움도 체면도 없는 방식으로 시체를 다뤘다. 건강도 부도 오래 지속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쾌락을 즐기며 한순간의 열락을 중요시했다."

시민들은 "도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고, 왜 이토록 살아가기 힘든 것이냐"고 한탄하며 지혜를 구했다. 하지만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자처했던 소피스트들은 말재주만 요란하게 펼쳐 놓을 뿐 이었다. 이목은 대화법을 통해 소피스트들에게 무지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 준 소크라테스의 입에 쏠렸다.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이라는 나훈아의 절규는 이 연장선에 있다.

그럼에도 '테스형'이 희망적인 것은, 지혜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태에서 럼 무지(無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포리아(aporia) 상황에 처해서야 비로소 싹트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역설은 지혜를 갈구하는 출발점이 어디이어야 하는 지를 웅변적으로 알려준다. 삶의 난제에 답을 내어 줄 수 있는 철학이라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자세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코로나19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아닐 수 없다. 나훈아가 노래한 '테스형'의 노랫말이 한숨 짓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묘한 에너지를 솟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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