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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1.03 15:34:17
  • 최종수정2024.11.03 16:15:18

박영순

'파란만장한 커피사' 저자

한 잔의 커피가 선사하는 행복을 표현하기 위해 더 이상 외국 서적을 헤매지 않아도 될 성싶다. 마음 깊숙이 퍼지는 정서를 정제된 언어로 묘사하기 위해 헤밍웨이나 카뮈의 작품을 서성거리지 않아도 되겠다. 우리에게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생긴 덕분이다.

커피 향에 설레고, 때론 되레 고독해지는 감성을 어찌 남의 언어에 의탁해 오롯이 담아낼 수 있을까. 나의 커피 맛은 나의 언어로 경험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목을 타고 내려와 관능의 일부가 되는 커피, 그 커피가 내 안에서 일으키는 구체적인 현상을 타자와 공감하기 위해서 나에게는 한국어가 소중하다. 한강 선생의 문학적 표현은 커피 향미의 미묘한 뉘앙스마저 온전하게 드러낼 멋진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커피는 감각적이다. 향, 맛, 촉감, 표상과 고운 울림 등 오감이 작동된다. "눈이 내리면 모든 것이 멈춘다. 바람도 소리도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흰')는 표현에서, 커피애호가들은 '눈이 내리면'을 '커피를 마시면'으로 바꿔 깊이 사유할 수 있다.

커피는 정서적이다. 마시는 사람의 감정과 기억이 깊이 연관돼 있다. 커피가 위로가 되기 위해선 고통이 전제된다. 한 잔의 커피는 비로소 상처를 관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얀 꽃잎들이 허공에서 날아다녔다. 그것은 먼지가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속삭임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잊히는 아픔'을 위로한다. 정서가 되는 것만큼 깊이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나의 커피는 서정적이면 좋겠다. 시처럼 평화로움만이 내 안에 머물기를 소망한다. 즉각적인 감각보다 시간을 뛰어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본질에 나의 커피 향기가 감돌기를… "아름다운 사물을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희랍어시간')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커피 한 잔을 마주한다.

사실, 커피는 모든 호모사피엔스에게 인지적이다. 강렬한 신맛과 쓴맛은 감각을 일깨우고, 향기는 망각의 족쇄를 풀어내며, 온기와 냉기는 의식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로 인해 내면에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추상은 감각 경험을 넘어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끌어 준다. 자목련은 왜 흉터 많은 꽃잎들을 떨구었으며, 바다를 본적이 없는 그의 눈 안에서 왜 파도가 출렁이는지, 그리고 인간의 몸이 본시 슬픔을 타고나 이유를….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성을 탐구한 '소년이 온다'는 커피음용자로 하여금 노동, 환경을 염려하는 윤리적 소비의 당위성을 일깨우며 더 넓은 세계와 가치에 우리를 연결 짓게 한다.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던 영혜의 몸부림은 서구 중심의 사고에 찌든 커피 문화에 변화를 촉구하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커피를 그냥 마실 순 없다. 의미를 곱씹으며 마셔야 한다는 다급함이 한강 선생으로 인해 생겨났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고통과 고독, 아픔과 상처, 위로와 치유에 대한 정신적 순례를 자처하겠다는 욕구도 솟고 있다. 우리의 정서가 배인 우리말 표현으로 이웃과 소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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