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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5.15 16:20:12
  • 최종수정2023.05.15 16:20:12

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

"공정무역 커피가 맛이 왜 이렇지요? 유기농 커피라면서요. 그렇다면 고급커피 아닌가요?"

커피테이스팅 강의에서 종종 나오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당혹스러웠다. 사전 요청에 따라 주최측이 제공한 공정무역 커피를 테이스팅에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커피의 면모는 갖추고 있는데, 후미가 떫고 거친 데다 묵은 맛도 비쳤다. 결점두로 인한 이취가 감지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드립용으로 마시기에는 당초 로스팅이 진하게 됐고, 생두를 볶은 지도 시간이 꽤 지난 것이 분명했다. 관계자에게서 한 두달 전에 드립백 상태로 공정무역 커피를 받아 사무실 캐비닛에 보관했던 것이라는 말을 듣고 상황이 이해됐다. 가정에서 모카포트나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는 분들도 많아 커피를 다소 진하게 볶아 드립백에도 사용했다는 부연 설명도 들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스페셜티 커피라고 해도 이렇게 볶고 시간을 지체한 뒤 테이스팅하면 좋을 수 없다.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질문들에는 한결 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공정무역 커피는 형편이 어려운 재배자들이 생산하기 때문에 나무가 병들어도 농약을 구입할 여력이 없습니다. 자연 그대로 커피를 생산할 수밖에 없어 유기농 커피인 것입니다. 향미가 좀 부족하고 때론 결점두가 섞여 있더라도 재배자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커피인 것이지요."

공정무역 커피 애용을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라고 부르는 것은 '재배자들의 노고에 제값을 치르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소비(economic consumption)'일 뿐이다. 재배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이해하고 상품의 질이 부족하더라도 구매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보다 좋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심성이 담긴 것이다.

미얀마, 네팔, 동티모르뿐 아니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카메룬 등 대규모 커피 산지에도 오지의 작은 농장들은 윤리적 소비의 손길이 간절하다.

공정무역은 1940년대 비영리단체들과 종교기관을 중심으로 한 대안무역(alternative trade) 운동에서 시작됐다. 빈곤한 생산자들이 만든 수공예품이 자선단체 매장에서 팔린 것이 공정무역의 모태이다. 초기에는 시장에서 소외된 소규모 생산자와 직거래를 통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중간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는 불평등한 무역 구조를 개혁하는데 노력이 집중됐다. 1970년대까지는 시민단체, 공정무역단체, 개발협력단체 등 비영리단체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틈새시장에서 적은 사람들만이 이용하는 수준이었다.

1960년대 미국이 최초의 공정무역 제품으로 커피를 선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비량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커피의 조달이 소비자에게도 절실하다는 점에서 가난한 농부를 돕는다는 대안무역의 성격이 공생하는 공정무역으로 바뀌게 됐다. 여기에 1988년, 멕시코의 커피생산자들을 후원하던 네덜란드 단체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가 공정무역 인증 라벨을 만들면서 기업들도 참여하는 글로벌 캠페인이 실현됐다.

일각에서 공정무역 커피가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이 됐다고 비판하지만, 공정무역 커피를 구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덕을 쌓은 일임은 분명하다. 누군가의 행복을 염원하는 착한 소비가 이런 잡음으로 주춤거려서는 안된다. 잡음이 있다 손 치더라도 인류애를 실천하는 공정무역 커피 소비의 물결은 더욱 거세져야 옳다.

다만, 공정무역 커피는 다소 부족함이 있는 커피이기에 관계자들이 최대한 향미를 좋게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맛도 지속가능한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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