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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2.02 14:34:36
  • 최종수정2025.02.02 14:34:35

박영순

'파란만장한 커피사' 저자

커피는 파르마콘(pharmacon)이다. 쓴맛을 내는 성분을 보면 실감이 난다. 쓴맛이 두드러지면 그윽한 향미를 그르치지만, 없다면 커피 답지 못하다. 각성이나 항산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커피에게 독특한 쓴맛은 본질이다. 커피의 쓰임새가 쓴맛에 있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달거나 과일처럼 상큼한 긍정적인 맛들은 쓴 성분을 삼키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최근 논문들을 종합하면, 커피에서 쓴맛을 내는 주요 성분은 모잠비오사이드(Mozambioside)이다. 이 물질은 20개의 탄소 원자로 구성된 테르펜 화합물(디테르펜)에 당 분자가 결합한 형태인데, 카페인보다 약 10배 더 강한 쓴맛을 발휘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7가지 분해산물을 형성하며, 2개의 쓴맛 수용체를 활성화한다.

모잠비오사이드가 혈당과 인슐린 수치를 조절하는 데 관여해 당뇨병 관리에 유익하고, 항염증 효과와 함께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예방에 잠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한 잔에 담긴 커피에서 쓴맛을 내는 정도는 모잠비오사이드가 가장 강력하고 나머지는 클로로겐산 락톤(Chlorogenic acid lactones, CQLs), 페닐인단(Phenylindanes), 카페인(Caffeine), 카페스톨(Cafestol)과 카웨올(Kahweol), 멜라노이딘(Melanoidin) 등의 순이다.

이들은 생리활성물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카페인은 적절한 양을 섭취하면 각성, 인지 기능 향상, 대사 촉진 등의 이점을 제공한다. 클로로겐산류는 항산화-항염증 효과와 함께 혈당 조절에 도움을 준다. 카페스톨-카웨올과 같은 디테르펜류는 항염증-항암 기능을 하지만,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볶인 커피에 고유한 색상을 부여하는 멜라노이딘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내고 소화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류의 건강에 유익하다면 단맛으로 감지되도록 진화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추정하건데, 우리는 아직 쓴맛에 대해 진화 중이다. 우리에게 단맛과 감칠맛을 포착하는 수용체는 각각 1개에 불과하지만, 쓴맛 수용체는 25개나 존재한다. 인류는 독성물질 섭취로 인해 수많은 목숨을 잃는 대가를 치르는 혹독한 과정 속에서 쓴맛에 대한 감각을 키워왔다. 덕분에 쓴맛에 대한 민감도가 신맛보다 수십 배, 감칠맛보다 수백 배, 단맛에 배에 수천 배 강하다.

우리의 유전자가 빼어난 것은 독소 중에서도 영양소를 가려내기 위해 수용체를 많이 거느리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독성물질들의 농도나 비율, 효용성에 따라 여러 수용체가 함께 작동해 보다 섬세한 신호를 전달하면서 '독'을 '약'으로 작용하도록 했다. 독성물질을 피하기 위해 더 강한 진화적 압력을 받았던 쓴맛으로서는 멋진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겨울철 식량이 부족하거나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로 인해 쓴맛이 나는 식물이 중요한 영양원이 되는 상황에서 쓴맛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생사를 갈랐다. 불의 사용으로 독성물질을 접하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쓴맛 수용체는 분화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쓴맛 수용체는 미각 외에도 위장관-호흡기 등 다양한 조직에서 발현되며, 면역 반응-호르몬 분비 등 여러 생리학적 기능에 관여한다. 지구환경이 급변하면 이들 수용체는 인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독성물질을 회피하는데 총동원될 것이다.

어찌 보면, 인류세(Anthropocene)에서 우리가 커피에 매달리는 것은 쓴맛에 대한 민감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한 잔의 커피에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의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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