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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7.10 15:16:44
  • 최종수정2023.07.10 15:16:43

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

'안데스 곰커피'가 나왔다는 외신을 보는 순간 섬뜩했다. '이젠 곰에게까지 커피 열매를 억지로 먹여서 배설물을 받아낸다는 말인가' 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AFP가 콜롬비아에 있는 엘 아길라(El Aguila) 커피농장에서 지난 6일 전 세계로 타전한 뉴스의 내용은 따스했다.

훌리안 필니야(Julian Pinilla)와 이웃한 커피 재배자 아홉 명이 농지 400㏊, 축구경기장 560개를 합한 면적에 달하는 땅을 멸종위기에 몰린 '안경곰'(spectacled bear) 서식지로 활용하라고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37세의 필니야를 비롯해 신세대 커피농부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해 100여 년째 대대로 경작해 온 땅의 일부를 자연으로 돌려보내 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콘세르바모스 라 비다'(Conservamos la vida)로 명명된 자연보존 캠페인은 그들이 속한 커피 명산지 바예 델 카우카 주를 중심으로 더욱 퍼져 나갈 기세를 보이고 있다. 콜롬비아 중서부에 위치한 이 주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으며 안데스 산맥을 타고 해발고도 2천 m에 커피농장들이 펼쳐져 있다. 변화무쌍한 기온과 바람, 깊은 계곡의 미네랄 토양, 풍부한 일조량이 어우러져 훌륭한 품질의 아라비카 커피가 생산돼 국내에도 적잖게 수입되고 있다.

땅을 곰 서식지로 제공한 농부들은 커피 재배와 가공에 필요한 장비와 도구, 친자연적 농법을 위한 동물 사료, 상하수도 시설, 야생동물이 농지를 훼손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울타리 시설 등을 환경단체로부터 지원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 마침내 최근 '카페 오소 안디노(Cafe Oso Andino)'라고 표기된 브랜드가 탄생했다. 우리말로 '안데스 곰커피'라는 뜻이다. 윤리적 소비를 좋아하는 소비자와 여러 환경단체를 통해 세계로 퍼져 국내에서도 머지 않아 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안데스 곰커피'는 기존의 공정무역처럼 자연을 보호하고, 지속적으로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면서도 재배자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공정무역은 어려운 형편의 재배자를 돕는 대안무역에서 시작해 생산자가 소비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조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반면 안데스 곰커피는 '재배자가 주도하는 야생생명체와의 화해'라는 측면에서 이채롭다. 농지로 개간했던 숲을 본래의 주인인 자연에게 돌려준 농부들은 "우리는 더 이상 민가로 침입하거나 농지를 훼손하는 곰들과 싸울 필요가 없게 됐다. 그들에게 돌려준 숲에서 곰뿐만이 아닌 많은 야생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고 반겼다.

안데스 곰커피는 또다른 이야기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를 관통하는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안경곰은 눈 주위의 흰 털이 둥근 고리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애칭이다. 곰 치고는 몸집이 작아 나무 위에 잔가지로 큰 집을 짓고 살며, 주로 나뭇잎이나 식물의 뿌리와 열매를 먹는다. 식단의 95%가 초식이다.

온순한 안경곰은 그러나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민가에 자주 출몰해 커피재배자들을 위협하게 됐다. 지난 한 해에만 1분마다 축구장 11개 면적에 달하는 열대우림이 훼손돼 스위스나 네덜란드 전체 면적보다 큰 숲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통해서도 야생동물이 겪는 고통을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이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살린 테디베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세계적 상품을 만든 반면, 영국에서는 안경곰을 캐럭터화한 '패딩턴 베어'가 엘리자베스 2세와 티타임을 갖는 등의 활약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름다운 사연을 간직한 '안데스의 패팅턴 베어 커피'가 나왔으니 더욱 주목을 끌 만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곰서식지 되돌려주기 운동에 우리도 신중하게 의미 있는 커피를 가려 구매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커피를 선택해 마시는 것만으로도 자연보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커피애호가로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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