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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03 16:08:59
  • 최종수정2020.02.03 20:15:35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무산소 발효커피(Anaerobic Fermentation Coffee)에서 시나몬 향이 난다고 할 때 이젠 마냥 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음식에 양념을 치듯 시나몬을 첨가한 커피들이 나돈다는 '시나몬게이트(Cinnamongate)'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커피 본연의 향미를 즐기며 '자연을 마신다'는 가치를 추구해 온 커피애호가들로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처럼 거대한 비리 의혹에나 붙는 게이트라는 용어를 봐도 이번 상황을 커피업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다. 인공 착향물질을 집어 넣지 않고 자연산 시나몬을 섞거나 가향 한다면 커피의 한 장르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향을 부여했음에도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자연스런 무산소 발효커피인양 내다파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는 비난을 면키 힘들다.

항간에는 "무산소 발효커피에서는 시나몬의 향이 난다"는 말이 마치 공식처럼 퍼지고 있다. 나아가 시나몬 향이 나지 않으면 질이 떨어지거나 가짜 무산소 발효커피라는 신념까지 생긴 터이다. 무산소 발효커피는 대체로 과일의 향미와 부드러운 단맛이 부각된다. 시나몬 향이 나는 것은 일부 산지에 그칠 뿐이다. 시나몬 향만으로 무산소 발효커피의 진위를 판단하는 그릇된 인식이 시나몬게이트가 생길 여지를 준 측면이 없지 않다.

무산소 발효커피는 열매에서 씨앗을 가려내는 가공 과정(Processing)에서 산소를 제거한 환경을 거침으로써 관능적으로 부드러움을 주는 면모를 갖추게 된다. 재배자들로서는 시설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을 망설여 왔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2015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호주의 사사 세스틱(Sasa Sestic)이 무산소 발효커피를 선보이며 세계 정상에 오른 뒤 커피애호가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어 2018년 폴란드의 아니에스카 로에브스카(Agnieszka Rojewska), 2019년 한국의 전주연이 각각 무산소 발효커피를 사용해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고급커피로서 위상이 높아졌다. 호기심 때문에 속속 찾는 사람이 몰리자 소비자 가격이 단숨에 치솟았다. 생두 1kg에 20만원~30만원을 받아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산소 발효커피의 맛이 달라지는 사연은 대략 이렇다. 발효는 미생물에 의해 유용한 물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인데, 좁게는 당질이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을 일컫는다. 굳이 '무산소'를 붙인 이유는 산소발효(Aerobic fermentation)라는 용어도 있기 때문이다. 산소발효는 유기발효 또는 호기성 발효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산소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잘 번식하는 초산균(Acetic acid bacteria)에 의해 식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 수 있다. 산소가 있는 상태에서는 미생물이 당질을 완전히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지만 무산소에서는 중간 물질이 쌓이면서 향미가 바뀐다. 사사 세스틱의 경우에는 '탄산침용(Carbonic maceration)'이라는 무산소발효 방식을 통해 산도가 높은 말산(Malic acid, 사과산)을 젖산(Lactic acid)으로 변화시켰다. 이 덕분에 커피의 맛이 요구르트와 버터와 같은 부드러움을 연상케 하면서 과일의 느낌이 강조된다.

시나몬 맛은 최근 세계 대회에서 그 맛이 나는 무산소 발효커피로 좋은 성적을 거둔 사례가 이어지면서 유행했다. 비싼 값에도 시나몬맛 무산소 발효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가향커피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시나몬에 알러지가 있는 한 커피전문가가 이를 마시고 이상 반응을 겪으면서 진상이 드러나게 됐다. 그는 시나몬을 우려낸 물에 커피 생두를 담가두었다고 로스팅하는 방법으로 시나몬맛 커피를 재현해 내는 퍼포먼스로 가짜 무산소 발효커피의 부당성을 인터넷에서 알리고 있다.

산지에서 만나는 재배자들은 한결같이 "커피의 맛은 하늘이 내린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향미를 즐길 수 있을지는 커피가 자라는 땅과 햇볕, 바람 등 자연환경에 달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같은 농장의 커피라도 해마다 맛이 달라지고 우리는 바뀐 맛을 통해 그 해의 자연을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와인으로 치면 테루아(Terroir)가 주는 행복이다.

특정한 맛을 내는 얄팍한 상술로 커피의 맛이 오염될까 두렵다. 자연을 담지 못하는 커피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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