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8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1.12.20 15:17:12
  • 최종수정2021.12.20 15:17:12

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

커피의 향미를 감상할 때 색상이 머리에 그려진다면 행복하다. 색이 커피 맛을 더욱 사무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케냐 니에리 장고농장 커피를 마실 때 토마토 꼭지의 진녹색이 마음에 스치고, 콜롬비아 킨디오 라모렐리아농장 커피는 핑크빛이 감도는 노란색을 떠오르게 한다. 에티오피아 구찌의 케노 내추럴커피는 시간에 따라 황도 복숭아 같은 주홍빛이 나타났다가 농익은 파인애플의 속살인 듯싶더니 진붉은 장미가 된다.

좋은 커피는 모두 특정한 색을 떠오르게 하고 그 인상으로 우리에게 보다 깊이 기억된다. 커피의 품질을 향미로 평가하고 묘사하는 커피테이스터(coffee taster)들은 1990년대부터 향미 속성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을 사용하고 있다. 명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향미의 품질과 수준을 속성으로나마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2017년에는 플레이버 휠에 색이 의미 있는 정보의 하나로 추가됐다. 디자인을 위해 사용되었던 색을 특정 부류의 맛과 연결 지어 표현한 것이다. 꽃향과 단맛은 빨간색, 산미와 발효취는 노란색, 식물체의 생동감은 녹색으로 칠하는 방식이다.

시각과 청각은 그 강도를 수치로 나타낼 수 있고, 미각과 냄새 또한 역치로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감각을 모두 합하고 체성감각(somesthesis)까지 동원해야 묘사할 수 있는 커피의 향미(flavor) 또는 맛(taste)을 수치로 나타내기란 불가능하다. 경계를 짓기 힘든 섬세함과 모호함 때문이다. 특별한 맛이 느껴질 때 '색다른 맛'이라고 하는 것에는 명료하게 감지되는 색을 통해서나마 맛이 다름을 표현하고 싶은 심정이 담겨있다.

색이 단지 표현의 차원에서 맛과 연관되는 것만은 아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색이 다른 커피 잔을 50여개 비치해 두고 그 순간의 커피에 어울리는 잔에 담아 향미를 감상했다. 구체적 개별자의 실존에 가치를 부였던 키에르케고르에게 커피 한 잔 한 잔은 마시는 순간마다 고유의 가치를 지니는 카이로스적 존재였다. 의식을 치르듯 커피를 대했던 그는 지그시 감은 눈으로도 커피의 본성을 사유했으리라….

옥스퍼드대학연구팀이 파란색 잔에 담긴 커피를 가장 달콤하다고 느끼고 흰색 잔이나 투명한 잔에 커피를 마셨을 경우 향과 맛을 더 강하게 감지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지 어느 덧 7년이 지났다. 앞서 칸딘스키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하고 소리를 색으로 표현한지는 125년이나 지났다. 하지만 우리의 관능이 장르를 넘나들며 감각이 서로를 자극하며 정보를 통합하는지, 메커니즘은 고사하고 그 의미조차 풀리지 않고 있다.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좋은 커피를 마시면 마음에 색상이 펼쳐지고, 거꾸로 특정한 선율을 듣거나 색상을 볼 때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오랜 커피의 향미와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분명 인간만이 누리는 호사임에 틀림이 없다.

수 만년 전 빙하기에 동굴에서 지내던 호모 사피엔스들은 캐모마일 차를 마시며 지상에서의 일상을 간절하게 머리에 그렸을 것이다. 감각을 두루 통합하는 공감각 능력은 언어와 함께 추상성을 부여받은 인류라면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본성인지 모른다.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주거환경이 안전해지면서 거친 자연에서 발휘했던 공감각의 스위치가 잠겨 그 잠재력이 DNA에 갇혀 있는 상상을 해본다.

20년 연구 끝에 환갑을 넘어 색채론을 발표한 괴테는 커피의 검은색을 통해 그 속에 카페인이 들어 있음을 직관(intuition)했다. 색으로 존재를 가늠하는 경지란, 스스로 사물과 하나가 돼 그 안에서 관찰하는 직관의 경지에서만 가능하다. 역시 인류가 지닌 위대한 추상성의 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 잔의 커피를 색과 소리를 추구하고, 색과 소리를 통해 한 잔의 커피를 떠올리는 것은 잃어버린 인류의 공감각 능력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