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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8.05 16:50:22
  • 최종수정2019.08.05 17:46:29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언어와 문자를 부여잡고 또 고심하고 있다. 말과 글의 기원에 관한 것인데, 영화 '말모이'를 보면서 생긴 병(病)이라면 병이다. 며칠 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를 감상한 뒤 병이 도지고 더 깊어졌다. '우리말을 모아 놓는 사전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은, 말이 인간의 신념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지 그 메커니즘을 좇는 것으로 이어졌다. 답을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난 '번민의 시간'이 기억에서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을 때 '나랏말싸미'가 들어와 의문의 꼬리를 물게 했다.

 한글이 '산스크리트(Sanskrit)어'의 발음구조를 빌려와 만든 소리글자라는 영화의 설정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어족(語族)은 언어학에서 하나의 공통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추정되는 여러 언어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한국어족(Koreanic languages)은 알타이어족의 하위 계통이라는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글을 우리 겨레의 독창적인 산물로 보는 관점에서 한국어의 뿌리가 인도유럽어족이라거나 알타이어족에 있다는 주장은 반갑지 않을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존스가 인도에 가서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산스크리트어가 라틴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족이 같다고 민족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영어와 인도어의 뿌리가 같다는 소식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라틴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이탈리아어파에 속하는 로마인의 언어로서, 기원전 1세기 이후 고대 지중해 주변 세계의 공용어가 됐다. 라틴어는 이탈리아를 동서로 흐르는 테베레강 하류에 있는 라티움(Latium) 지역에서 소통되던 사투리였다. 산기슭에 사는 라티니 부족의 언어가 오늘날 세계 공용어로 성장한 영어의 근원이라는 게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도유럽어족은 지구상의 언어 가운데 가장 잘 연구되고 분류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세계 인구의 30% 가량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어족으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러시아어·힌두어·그리스어·벵갈어·이란어 등이 이에 속한다. 반면 한국어는 지리적으로는 우랄산맥에서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를 묶는 알타이어족에 포함된다고 하지만 이견도 만만치 않다. 한국어를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도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이런 입장에서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문자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해 온 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복잡하고 아직도 명확하게 정립되지 못했다. 인류가 문자를 가지게 된 역사는 1928년 이라크의 신전 터에서 쐐기문자가 적힌 점토판이 발견됨에 따라 기원전 3천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인류가 언어를 갖게 된 역사의 깊이와 의미는 문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기원이 지금으로부터 5~7만년 전에 닿는다.

 인류가 언어를 갖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해부학적으로는 설명되고 있다. 요지는 인류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목의 후강이 내려 앉아야 하고 뇌의 용량이 커야 한다. 두 요건을 갖춘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이다. 언어를 갖게 되면서 인류는 그 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바뀐다. 한 때 호모사피엔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은 순식간에(?) 멸종됐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 보다 뇌의 용량이 떨어지지 않지만 지혜가 크게 부족했다는 관점은 일치한다.

 언어란 인류에게 지혜라는 말일까? 인류가 언어를 갖게 된 것은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결정적인 유전자가 2001년에 발견됐는데, 지금까지 여러 논란 속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폭스피투(Foxp2)'가 그것이다. 인류가 언어를 갖게 된 과정은 아직 베일에 가려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면서 똑똑해졌다는 사실이다. 언어를 담당하는 기관이 우리의 뇌에 있으며, 언어는 단지 '소통의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의 도구'이다. 언어가 없는 인류는 사고(思考)하지 못했다. 문자는 오랜 사유 속에 탄생했다. '나랏말싸미'에서 깊은 사유 속에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고단한 여정이 의미 있게 묘사됐다. 세종대왕에게 그렇게 위대한 지혜를 준 것은 결국 '언어'였다.

 '언어가 문자를 만들었다'는 명제의 의미가 생각할수록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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