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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1.02 14:32:27
  • 최종수정2025.01.02 15:21:41

박영순

'파란만장한 커피사' 저자

새해 첫 일출은 여느 때와 달리 보인다. 더 장엄하고 찬란하며 강렬하면서도 따스하다. 어제 뜬 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상이지만, 우리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 다르다. 왜 그럴까.

커피 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예측 처리 이론(Predictive processing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이론은 "같은 커피라도 강력한 기대감을 갖고 마시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2025년 첫 아침의 태양을 보고 그 기운을 받으면, 희망에 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일출을 우리 정서에 더욱 아름답게 새겨 놓았다. 오랜 세월 속에서 새해를 가슴 벅차게 맞이하는 문화가 '신년 해돋이는 희망'이라는 인상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첫 새벽의 빛줄기, 그것의 본질은 '희망'이다.

한 잔에 담겨 내 앞에 덩그러니 놓인 커피의 본질에 닿기 위해선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할 일이 아니다. 일단 그 커피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챙겨서 기대감을 부풀려 놓으면 좋겠다. 어디에서 누가 키운 것이며, 언제 어떻게 수확되어 가공됐는지를 알면 커피의 맛이 예측되기도 해서 설렘은 더욱 커진다. 커피의 씨앗이 싹을 터 생두로 완성될 때까지 산지에서 벌어진 모든 일에 작용한 자연적인 영향, 곧 떼루아(Terroir)가 커피의 향미적 가치를 드높인다.

커피를 맛볼 때 인간은 단지 코와 입으로 향미의 속성을 입력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무엇을 지각할 것으로 기대하는지에 대한 예측까지도 포함해 뇌를 작동시킨다. 떼루아와 맛이 일치하면 안도를 하고, 기대와 같지 않으면 실망감이 커진다.

여기서 맛이란 아로마, 산미, 향미, 질감, 후미 등 여러 지표의 구체적인 속성을 100점 만점으로 수치화하는 것보다는 '인상(Impression)'이 더 크게 작용한다. 커피의 정체성, 산지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향미를 아라비아 숫자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커피의 맛을 표현하는 데 전체적인 인상을 포착하는 것이 구체적인 속성을 나열하고 수치화하는 것보다 더 유익할 수 있다. 미술에서 인상파가 그랬다. 모네가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형태들을 포착해 해돋이의 본질을 그려낸 것처럼 커피를 즐길 일이다.

커피의 맛은 겹겹이 쌓여 복잡하고, 때론 순간적으로 변화하기도 해서 개별적인 요소들을 나열하기보다 전체적인 인상을 잡아냄으로써 본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이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뇌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할 때 종종 전체적인 패턴을 먼저 인식하는 까닭이다.

커피 맛도 인상을 포착하는 노력을 더 기울이면 좋겠다. 예를 들어, "꽃과 과일, 빵 굽는 향이 풍성해 아로마 8점을 부여한다"라는 표기보다 "봄날의 정원을 연상시키고 빵집을 지나칠 때처럼 푸근함을 주는 커피이다"라고 말하는 게 쉽고 친근하다. 나아가, 김소월의 시적 표현을 활용해 "이 커피는 산유화처럼 소박하고 단아하다. 신선한 포도의 맛이 새가 날아오르는 듯 경쾌하고, 묵직하면서도 적절한 산미는 꽃잎이 흔들리는 듯한 긴장감을 더해준다"라고 해도 좋겠다.

우리 겨레가 마시는 커피를 엉뚱하게 바다 건너 이민족이 평가하는 점수에 맹종하지 말고, 한국인의 정서와 맥락에 맞게 즐겼으면 좋겠다. 우리말로 쓴 한강 선생의 작품이 노벨문학상까지 받는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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