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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국민 MC 유재석이 텔레비전에 나와 반짝이 옷을 입고 트로트를 부를 때는 '그런가보다'했다. 젊은 개그우먼이 45년생 둘째 이모라고 능청스럽게 우길 때는 코미디인 줄 알고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 환갑을 훨씬 넘긴 가수 인순이가 머리를 토끼처럼 묶고, 스무 살의 아이돌 지망생 '영순이'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본 후, 이제야 무언가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알고 보니, 수상함의 정체는 '부캐'였다. 원래 캐릭터가 아닌, 추가로 만든 캐릭터를 말하는데, 게임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줄인 말이란다. 본캐(본래 캐릭터)가 원래 본인의 직업이자 본래의 모습이라면, 부캐(부 캐릭터)는 본래의 직업이 아닌 부업으로 활동한다거나, 현재의 나와 다른 캐릭터로 활동하는 것을 이른다. 아는 게임이라곤 고등학생 때 하던 '갤러그'와 '테트리스'가 전부인지라, 캐릭터를 키우는 요즘 게임은 모를 수밖에, '부캐'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을 젊은이들이 일상어로 사용하면서 여러 곳에서 확대하여 쓰고 있다.

유재석씨는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라는 가수 캐릭터 말고도, 예능 투자자 '카놀라유' 등 여러 부캐를 만들어 요즘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나온다. 또, 시청자들은 김신영의 부캐인 45년생 '둘째이모김다비'가 귀엽고 통통하던 개그우먼 김신영이라는걸 알면서도 속아준다. 잘나간다는 연예인뿐 아니라, 주위에는 자신의 본업보다 부업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이쯤 되니, '나도 뭔가 다른 캐릭터 하나쯤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나의 '본캐'를 정의하는 일부터 자신이 없다. 내 주위의 몇몇은 옆도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이다. 그들은 결승선이 갑자기 사라져 더 달릴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부캐는 커녕, 본캐의 존재마저 찾을 수 없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상이라고도 말한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은 아파트 베란다에 제라늄만 가득 심어 키우는 중이라 한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 오랫동안 일만 하던 사람들은 무언가라도 하기 위해 아침부터 일찌감치 산을 오르고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세상의 흐름을 벌써 눈치채고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를 말했다. '다중적 자아'라는 뜻으로 개인이 상황에 맞춰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사느라 넣어 두었던 제2, 제3의 페르소나를 꺼내어 쓰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걸맞은 가면을 쓰고 주어진 상황을 연기하는 시대를 산다. 누구를 만나면 과묵한 사람이 되고, 누구를 만나면 쉼 없이 떠드는 수다쟁이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한없이 착한 사람인가 하면, 누구에게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부캐와 비슷한 이 상황을 이미 살고 있었다. 본인도 모르게 변하는 이런저런 자아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니, 직업적인 관점에서 본캐가 잠시 없어졌을 뿐, 다른 쪽에선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내로, 또, 어떤 권력으로도 어쩌지 못할 자신으로 굳건히 건재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멀티 페르소나는 감춰진 유전자 속에서 언제라도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가, 그것들이 모여 정체성을 만들고, 여러 종류의 부캐가 모여 본캐가 된다는 걸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당신, 부러워 마시라.

혹시 누가 아는가?

제라늄을 키우던 그 경험이 꽃 전문가가 되고, 아침 일찍부터 애먼 산을 열심히 올랐던 능력은 훌륭한 산악인이 되어 당신의 또 다른 부캐가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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