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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태어나는 일 못지않게 존엄이 지켜져야 하는 일이 죽는 일이건만 요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정의되지 않은 용어 '고.독.사' 글자로 써 놓고 보아도 외롭고 아픈 단어이다. 죽는다는 것, 말끝마다 '죽어야지'를 달고 살아도 죽는다는 일은 누구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려운 일. 더구나 혼자서 죽어가는 일이란, 생각만 해도 빈들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어르신들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쭙는 중에 한 어르신께서 할 얘기가 있다고 하셨다. 그 어르신은 처음 뵈었을 때 옛날 집 대청마루에 늘 자리 잡고 있던 맷돌같이 단단한 느낌이 들었던 분이다. 외모만큼 마음도 단단했던 분이시다. 그래서인지 어르신과 라포(Rapport)가 형성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늘 큰 목소리로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기운 없이 숨어들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건강문제든지 자녀 문제일 것이다. 말씀한다고 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히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슬프다고, 마음 아프다고 내가 먼저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보이거나 흥분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눈물이 많은 나에게는 늘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어르신의 이야기보다 이야기 뒤에 숨겨진 마음을 읽는 일이 중요하다.

 마음을 다잡고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해쓱해진 얼굴의 어르신을 뵙는 순간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새벽기도에서 아프지 않고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고 데려가 달라고 했다고 하신다. 무슨 연유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긴장이 되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여쭈니 그동안 위가 쓰리고 설사를 자주 했었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두툼한 봉투를 내미신다. 건강검진 결과를 우편으로 받으신 모양이다.

 내용을 보니, 비만과 고지혈증이 있으니 운동을 하며 신체 활동량을 늘리라는 처방이 써 있다. 혈압은 경계치에 있으나 약을 잘 드시니 문제 될 건 없어 보인다. 뒷장을 보라 하신다. 위암 검사를 받으신 결과가 나와 있다. 위에 약간의 염증과 위하수, 이 정도는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 흔히 갖고 계신 질병이니 잘 관리하면서 지내신다면 크게 문제가 보이질 않는다. 다음 장 대장 검사도 이상 없다는 검사결과지이다.

 "어르신 이 정도면 건강에 별문제는 없으신데요. 운동 조금씩 하면서 식사 잘하시면 백 살은 더 사신다고 쓰여 있는데요." 짐작했던 큰일이 아니라서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어르신은 의아한 얼굴로 "위암하고 대장암이 걸렸다고 나한데 통지를 해준 거 아녀?" 잘 보라고 손으로 짚어가며 다른 글자보다 크고 진한 글자를 또박또박 읽으신다.

 "위 암 검 진 결 과 통 지 서, 대 장 암 검 진 결 과 통 지 서"

 검진결과를 적은 내용은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씌어 있다. 나도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보니 어르신처럼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닌 듯했다. 검진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또 얼마나 긴장되고 초조하셨을까, 그렇지 않아도 속이 불편하여 걱정되던 차에 위암과 대장암이라는 큰 글씨를 읽고 보니, 작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을 리가 없었겠다. 온갖 상상을 하며 마음의 지옥을 경험하셨을 어르신이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본다.

 어르신은 지난 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가방을 메고 한글학교를 다녔다. 그동안 배운 글자를 쓰고 읽는 즐거움이 컸을 어르신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을까, 자식들에게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안고, 며칠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셨을 어르신이 한마디 하셨다.

 "무신 눔의 글씨가 개미 똥만 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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