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23.5℃
  • 흐림강릉 30.0℃
  • 서울 24.7℃
  • 흐림충주 25.2℃
  • 흐림서산 23.4℃
  • 청주 24.5℃
  • 대전 24.5℃
  • 흐림추풍령 25.6℃
  • 대구 28.9℃
  • 흐림울산 27.3℃
  • 광주 26.0℃
  • 부산 23.5℃
  • 흐림고창 25.6℃
  • 홍성(예) 24.7℃
  • 흐림제주 29.7℃
  • 흐림고산 22.9℃
  • 흐림강화 22.9℃
  • 흐림제천 23.8℃
  • 흐림보은 24.4℃
  • 흐림천안 24.4℃
  • 흐림보령 24.3℃
  • 흐림부여 24.7℃
  • 흐림금산 25.4℃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8.5℃
  • 흐림거제 24.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정원

수필가

축사에 들어선 남편이 "아가야!"라고 불렀다. 그러자 송아지 한 마리가 꾀죄죄한 몰골로 나온다. 기운이 없는지 걸음걸이가 불안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미의 손길이 닿지 못한 어린것들은 표시가 난다. 씻기고, 빗기고, 어루만져주어야 아이들도 반짝거리듯, 어린 송아지들도 몸 구석구석 어미의 혓바닥으로 빗질한 흔적이 나야 내딛는 발굽에도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아가'는 한참 전부터 남편이 오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남편의 옷을 지분거리기도 하고, 손가락을 핥았다. 배고픈 송아지에게 믿을 것은 제 어미도 아니고, 옆집 아줌마도 아니었나 보다. 남편은 걸음걸이조차 시원치 않은 '아가'를 앞세우고, 심청이 아버지가 어린 심청을 안고 젖동냥 다니듯, 젖어미가 있는 칸칸마다 구걸하듯 다녔다.

여전히 '아가'의 어미는 심드렁하다. 왜 마음이 식었을까, 어미는 산달을 한참 넘기고도 태평했었다. 새끼를 낳을 기미가 전혀 없더니, 저녁부터 시작된 진통으로 바닥을 빙빙 돌다가 뿌연 새벽에 새끼를 낳았다. 어미는 큰 눈을 휘둥그레 뜨고 거친 혓바닥으로 새끼 몸뚱이를 핥고, 반대쪽에서는 남편이 드라이기로 미끈거리는 털을 말려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어미는 그토록 오래 기다려 낳은 새끼를 모른 척했다. 바들바들 흔들리는 다리로 일어서 어미 젖을 찾느라 정신없는 새끼를 뒷발로 찬다. 세게 발길질을 한다기보다, 거절하듯 밀어낸다. 새끼를 낳느라 너무 힘들어 그렇겠거니 했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어미의 발길질은 뺑덕어멈의 손길처럼 거칠었다.

며칠간 이어진 남편과 '아가'의 젖동냥은 눈물겨웠지만, 어미 소들의 인심은 자못 사나웠다. 제 새끼가 빨던 젖을 '아가' 입으로 슬쩍 밀어 넣은 걸 용케도 알고서 휙, 돌아치는 고갯짓이 매몰차다. 여러 칸을 돌아다녔지만 '아가'의 주린 배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할 수 없이 연이은 거절에 풀 죽은 '아가'를 데리고 나와 기술센터에서 얻어다 얼려놓은 초유를 녹여 먹였다.

어미소를 중심으로 일면식 없는 아비를 가진 송아지들이 사는 번식우 축사는 모계사회다. 그들의 관계는 이모이거나, 언니이거나 아님, 할머니뻘로 구성된 집단이다. 예전처럼 아비를 따른 씨족 사회보다 연대가 끈끈하여 젖동냥이 수월할거라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나 보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배고픔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군자도 삼 일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는다지 않던가, 젖소의 초유로 입맛을 다신 '아가'는 기운이 나는지, 도둑 젖 먹는 요령도 조금씩 늘었다. 이제는 '치고 빠지기' 기술도 유연하게 구사한다. 제 어미젖을 먹고 있는 송아지 옆에서 자연스럽게 젖꼭지를 탈취한다. 뒤늦게 알아차린 어미 소도 대수롭지 않은 듯 서 있기도 하고, 가끔 고개를 돌릴라치면, 빠르게 줄행랑을 쳐 다른 어미 소 옆에 붙어있다. 눈치꾸러기가 되긴 했어도 굶어 배고플 일은 없을 듯해 마음이 놓였다.

그러더니, 요즘 남편의 '아가'가 맘이 변한 듯하다. 심청이 아버지처럼 젖동냥 다녀 얻어 먹이고, 우윳병 물려 배를 불려 놓았건만, '아가'는 알은체도 안 하고 남편을 지나쳐 뛰어다닌다. 서운한 남편이 아무리 "아가야!"를 외쳐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축사 통로를 냅다 뛰어다니는 '아가'의 궁궁이에 설핏 살이 올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거칠게 엉켜 지저분하던 송아지 털이 가지런하다. 목덜미 부드러운 쪽에는 혓바닥 빗질 자국이 빼곡하다.

장난끼가 발동한 남편이 모른척하며 달려가는 "아가'를 꼭 붙잡았다. "옴메~!" 하는 소리에 축사 안에서 태평하던 둥그런 눈들이 우르르 축사 통로로 몰렸다. 멈칫한 순간 '아가'는 재빠르게 빠져 달아났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