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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축사에 들어선 남편이 "아가야!"라고 불렀다. 그러자 송아지 한 마리가 꾀죄죄한 몰골로 나온다. 기운이 없는지 걸음걸이가 불안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미의 손길이 닿지 못한 어린것들은 표시가 난다. 씻기고, 빗기고, 어루만져주어야 아이들도 반짝거리듯, 어린 송아지들도 몸 구석구석 어미의 혓바닥으로 빗질한 흔적이 나야 내딛는 발굽에도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아가'는 한참 전부터 남편이 오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남편의 옷을 지분거리기도 하고, 손가락을 핥았다. 배고픈 송아지에게 믿을 것은 제 어미도 아니고, 옆집 아줌마도 아니었나 보다. 남편은 걸음걸이조차 시원치 않은 '아가'를 앞세우고, 심청이 아버지가 어린 심청을 안고 젖동냥 다니듯, 젖어미가 있는 칸칸마다 구걸하듯 다녔다.

여전히 '아가'의 어미는 심드렁하다. 왜 마음이 식었을까, 어미는 산달을 한참 넘기고도 태평했었다. 새끼를 낳을 기미가 전혀 없더니, 저녁부터 시작된 진통으로 바닥을 빙빙 돌다가 뿌연 새벽에 새끼를 낳았다. 어미는 큰 눈을 휘둥그레 뜨고 거친 혓바닥으로 새끼 몸뚱이를 핥고, 반대쪽에서는 남편이 드라이기로 미끈거리는 털을 말려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어미는 그토록 오래 기다려 낳은 새끼를 모른 척했다. 바들바들 흔들리는 다리로 일어서 어미 젖을 찾느라 정신없는 새끼를 뒷발로 찬다. 세게 발길질을 한다기보다, 거절하듯 밀어낸다. 새끼를 낳느라 너무 힘들어 그렇겠거니 했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어미의 발길질은 뺑덕어멈의 손길처럼 거칠었다.

며칠간 이어진 남편과 '아가'의 젖동냥은 눈물겨웠지만, 어미 소들의 인심은 자못 사나웠다. 제 새끼가 빨던 젖을 '아가' 입으로 슬쩍 밀어 넣은 걸 용케도 알고서 휙, 돌아치는 고갯짓이 매몰차다. 여러 칸을 돌아다녔지만 '아가'의 주린 배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할 수 없이 연이은 거절에 풀 죽은 '아가'를 데리고 나와 기술센터에서 얻어다 얼려놓은 초유를 녹여 먹였다.

어미소를 중심으로 일면식 없는 아비를 가진 송아지들이 사는 번식우 축사는 모계사회다. 그들의 관계는 이모이거나, 언니이거나 아님, 할머니뻘로 구성된 집단이다. 예전처럼 아비를 따른 씨족 사회보다 연대가 끈끈하여 젖동냥이 수월할거라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나 보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배고픔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군자도 삼 일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는다지 않던가, 젖소의 초유로 입맛을 다신 '아가'는 기운이 나는지, 도둑 젖 먹는 요령도 조금씩 늘었다. 이제는 '치고 빠지기' 기술도 유연하게 구사한다. 제 어미젖을 먹고 있는 송아지 옆에서 자연스럽게 젖꼭지를 탈취한다. 뒤늦게 알아차린 어미 소도 대수롭지 않은 듯 서 있기도 하고, 가끔 고개를 돌릴라치면, 빠르게 줄행랑을 쳐 다른 어미 소 옆에 붙어있다. 눈치꾸러기가 되긴 했어도 굶어 배고플 일은 없을 듯해 마음이 놓였다.

그러더니, 요즘 남편의 '아가'가 맘이 변한 듯하다. 심청이 아버지처럼 젖동냥 다녀 얻어 먹이고, 우윳병 물려 배를 불려 놓았건만, '아가'는 알은체도 안 하고 남편을 지나쳐 뛰어다닌다. 서운한 남편이 아무리 "아가야!"를 외쳐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축사 통로를 냅다 뛰어다니는 '아가'의 궁궁이에 설핏 살이 올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거칠게 엉켜 지저분하던 송아지 털이 가지런하다. 목덜미 부드러운 쪽에는 혓바닥 빗질 자국이 빼곡하다.

장난끼가 발동한 남편이 모른척하며 달려가는 "아가'를 꼭 붙잡았다. "옴메~!" 하는 소리에 축사 안에서 태평하던 둥그런 눈들이 우르르 축사 통로로 몰렸다. 멈칫한 순간 '아가'는 재빠르게 빠져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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