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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지난달 중순에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을 받는다고 했을 때,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듯했다. 다음날 어렵지 않게 예약 일자를 잡을 수 있었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내가 전파자가 되는 것이 더 두려웠지만, 막상 예약해 놓은 날짜가 다가오자 이런저런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위에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돌아가신 어르신 이야기와 백신 부작용으로 고생하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생긴다는 대상포진까지 앓느라 한 달 넘게 고생했다는 지인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다.

큰일을 앞둔 것처럼, 접종 후 이틀 동안의 일정을 미리 조정했다. 이전부터 잡혀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받아만 놓고 보내지 못한 메일의 답장을 쓰고, 챙겨야 할 전화도 미리 했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내 목소리 너머 전에 볼 수 없던 비장함을 느꼈으리라. 온전히 백신 접종을 위해 날짜를 통째로 비워 두었다

예측할 수 없음이 불안을 낳는다지. 포털뉴스에는 백신 접종 부작용인 아나팔락시스를 대비한 코로나 보험이 등장했다고 나온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깜깜한 오늘의 불안한 틈을 비집고, 또 새로운 보험이 생긴 모양이다. 나 또한, 여름이면 광 알레르기에 민감도가 높아 걱정을 안고 병원 의자에 엉거주춤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원 대기실 벽에 표준 예방 접종표가 붙어 있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 맞는 결핵 예방접종을 시작으로 6개월에서 1년 안에 웬만한 예방접종은 마치게 된다. 한두 번의 예방접종으로 b형 간염,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뇌수막염 등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없이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으로부터 이겨낼 힘을 갖게 된다. 해마다 유행하는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하고 대상포진이나 자궁경부암 같은 치명적인 병도 예방주사로 예방할 수 있으니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접종하라는 안내표도 붙어 있었다. 질병뿐만 아니라 살면서 겪는 어려움 앞에서도 예방 주사를 맞고 무던히 견딜 수 있거나, 아예 피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 든든한 면역력을 갖게 된다면, 아무리 힘든 삶이라 해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상처받는 일은 없을 테니.

평소 안면이 있던 간호사가 주사 부위에 동그란 테이프를 붙여 주면서 "증상이 없어도 일단 오늘 저녁에 타이레놀 한 알을 드세요"라고 친절하게 한마디 일러줬다. 접종 후 15분간 병원에 머물다 가야 한다는 말에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묻어났다. 두 달 전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한 남편은 다음 날부터 오한과 몸살 기운으로 온종일 잠만 자는 것을 지켜보았던 터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병원문을 나섰다. 아래층 약국에 들러 타이레놀을 한 곽 사 들고 나왔다.

주사 맞은 당일은 아무런 증상이 없이 지나갔다. 다음날, 주사 부위에 약간의 뻐근함과 살짝 아픈 정도의 통증이 있었을 뿐, 열은 오르지 않고 약한 몸살 느낌이 드는 정도였다. 삼 일째인 오늘은 주사 맞은 부위의 통증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덕분에 아무런 일정도 없이 텅 비어버린 날, 오롯이 몸에 신경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고 변이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지자체의 핸드폰 알림에 불안하고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알림마저 무덤덤해지는 일상이 되는 건, 염려를 넘어 더 공포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기꺼이 작은 고통을 감수하며 예방 주사를 맞아 큰 질병을 피할 수 있듯이. 어쩌면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 상황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작은 고통일 수 있다.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현명하게 지날 수 있다면, 우리도 모르게 다가올 더 큰 재앙을 피하는 백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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