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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얼마 전,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커피숍 옆자리에서 세 명의 여학생이 앉아 얘기하는 걸 듣게 되었다. 무료하던 차에 들리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한쪽 귀가 점점 커지고, 입이 근질근질 해져서 하마터면 그 학생들 사이에 비집고 앉아 주책을 떨 뻔했다. 이른바 '깻잎 논쟁'이라던데, 가볍고 사소해서 '논쟁'이라는 단어가 귀엽게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나와 나의 애인과 내 친구,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는 중에 반찬으로 나온 깻잎 김치를 내 친구가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집는데, 자꾸 여러 장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는 걸 보고, 애인이 젓가락으로 잡아서 깻잎 떼는 걸 도와주었다나. 그걸 본 나는 '기분이 나쁘다, 아니다, 아무렇지 않다' 혹은, 내가 그 애인 입장이라면 '떼는 걸 도와준다, 아니다 모른 척한다'가 논점이라는 거다.

셋 중에 머리가 짧은 학생이 "나는 상관 없어"라고 툭 던졌다. 그러자 "아니, 내가 옆에 있는데, 왜 내 친구한테 신경을 쓰는 거야. 난 기분 나빠서 절대 못 잡아주게 할 거야. 그게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친구인 나한테 잡아주라고 말을 해야지"라며 옆에 앉은 학생이 친구의 말을 받았다.

하긴, 그 말도 맞긴 하다. 아니면 양손으로 떼서 먹으라고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하나 더 꺼내 주어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깻잎 한 장 못 떼어서 애쓰는 걸 본다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잡아주겠네"라며 머리 짧은 학생이 반론을 펼친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냐고. 게다가 본인은 밥을 같이 먹으면서 자꾸만 달라붙어 올라오는 깻잎 한 장 잡아떼어주지 않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은 본인 취향이 아니라고 한다. 매력이 없단다.

이 친구 말에 공감한다. 친하니까 밥도 같이 먹고, 밥을 같이 먹으니까 잡아줄수 있지. 물론, 연인 사이라는 게 애정의 독점이라는 전제가 깔리는 관계이긴 하지. 하지만 곤란한 상황의 친구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을 특별한 감정표현이라 단정 짓는 건, 파트너에게는 좁은 인간관계만을 강요하게 된다. 생각 해보라. 그대의 애인이 그대에게는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 연민이나 친절도 베풀 줄 모르는 차가운 사람이라면 좋을 것 같은지. 혼자 있을 때는 본인만 알다가, 애인 생기면 두 명 외엔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바퀴벌레 커플을 우리는 밥맛 없다고 말하지 않나. 그러다 그들이 가족을 이룬다면 그들 가족만 아는 가족 이기주의가 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두 학생의 전제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짧은 머리 학생은 두 연인 사이에 믿음이나 신뢰가 든든하게 자리 잡은 상태를 전제로 이야기한 것이고, 대립하고 있는 학생은 둘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거나 없는 상황을 전제했다. 어쩌면 이 학생은 막 연애를 시작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학생이 말한 기분 나쁨의 원인은 내 존재가 소외됨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럴 것 같은 마음이다. 그래서 지나친 집착을 애정이라 말하고, 과도한 헌신을 강요하고 강요받는 성숙하지 못한 연애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니 점점 사랑은 어려워지고, 짧게 끝나는 연애이거나, 아예 시작하기도 귀찮은 채식남, 건어물녀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모가디슈'속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마주한 저녁상에도 깻잎이 있었다. 남한대사 부인이 젓가락으로 떼고 북한대사 부인이 아무렇지 않게 잡아주던 그 뭉클함이 기억 난다.

마침, 말없이 커피만 홀짝이던 학생이 귀여운 처방을 내놓았다.

"애들아, 그만해. 다음에 우리는 이모님한테 깻잎을 다 떼어서 반찬 그릇에 동그랗게 올려 달라고 하자 응?"

"맛있는 깻잎은 죄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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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