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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먹쇠가 몸으로 전달되는 모든 신경을 꺼버리고 침묵에 들어갔다. 그동안 여러 번의 사인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기억해 냈다. 처음엔 기분이 나빠 심술부리는 정도로 생각했고, 이후에 잠깐 기절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미쳐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까. 기어코 정신 줄을 놓은 듯했다. 우왕좌왕하다 병원에 실려 보냈다. 먹쇠와 함께 계획했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그의 병원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내려진 진단은 '충전기능 상실'.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할 힘이 사라졌다 한다.

십 년을 한결같이 한 몸인 듯 다니다 보니, 내가 조정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가끔은 김유신의 말처럼 제가 알아서 가는 듯했다. 그의 말은 취한 그를 연인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다 놓아 목이 잘려나갔다지만, 나는 먹쇠가 잘못 들었던 길을 또 가고, 열두 번을 더 헤맨다고 하여도 목을 벨 수는 없다. 먹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경질을 부려대지만, 내게 유일한 길동무인 이유에서다.

얼마 전, 큰아이가 첫 직장엘 들어갔다, 큰아이가 운전은 초보인지라 이리저리 부딪힐 것을 생각해, 내가 타던 먹쇠를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큰아들이 몰고 다니던 먹쇠가 어느 날엔 한쪽 이마가 푹 꺼진 채 들어오는가 하면, 어떤 날은 옆구리가 주욱 긁혀 들어왔다. 헤드라이트엔 날벌레들이 날아들어 부딪힌 자국들로 불빛이 보이기나 할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새 차가 주는 안락함과 신선함보다 먹쇠의 상처가 신경 쓰여, 결국엔 새 차를 아들에게 주고 나의 먹쇠를 다시 찾았다. 아들이 끌고 다니는 새 차의 궁둥이가 찌그러지든, 페인트가 벗겨져 오든, 사람만 다치지 않았다면 감사했다.

십년지기가 이보다 가까울까. 아이들의 등하교를 함께 했으며, 직장을 다니고, 할머니들을 찾아다녔다. 차 안에서는 시끄러운 노래도 한쪽 귀를 막으며 들었을 테고, 누군가의 뒷담화도 아닌척하며 들었을 테지. 남몰래 펑펑 울던 날도 기억하고 있을 테고, 눈 내린 빙판길을 미끄러지며 한 바퀴 돌던 순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가 같은 운명임을 새삼스레 자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나이 들어 힘든 일 중의 하나가 병고(病苦)라, 점점 기력이 쇠하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 누구의 기억에도 남겨지지 않고, 어느 날 아무 흔적 없이 하얗게 소멸해 버리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지난번 산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왼 무릎을 삐끗한 이후, 노화의 증거들이 자주 나온다. 이미 병고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지만, 갑자기 사라질 수 없는 일, 내 몸처럼 움직이던 먹쇠도 이젠 세월과 함께 늙어가며 잡음들로 가득한 숨소리를 내고 있다. 앉았다 일어설 때 저절로 나오는 나의 '에구구구' 처럼 먹쇠는 자주 '크르렁'거린다.

인생에 친구는 세 명이면 족하다고들 하지만, 새 친구를 사귀는 일도 필요하다. 새로운 친구가 이끄는 새로운 지평을 함께 하는 일 또한 설레는 일이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헤어짐을 걱정하지 않듯이, 처음 물건을 살 때 물건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동차만큼은 예외다. 먹쇠 이전의 차와 이별도 쉽지 않았음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별은 생각만으로도 어렵다.

두어 시간의 기다림 끝에 길을 나섰다. 먹쇠의 '크르렁'소리는 나아지질 않았다. 오랜 세월 함께 늙어가는 옆지기에게 느낀 연민이 생긴다. 적당히 무뎌진 브레이크를 '꾸우욱' 밟으며 느끼게 되는 안도감은 오래된 친구가 투박하게 건네는 위로일 터, 예민함으로 인한 감정의 덜컥거림이 없다. 달리는 차 창문 밖으로 내민 손에 안기는 바람이 말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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