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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도마 위에 길게 누워 있는 이 생선은 바닷물에서 나와, 어는 동안 이름이 바뀌었단다. 지금은 뱃속 가득 알을 품고 누워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운명이다. 가공된 상태에 따라 수 없이 변하는 이름을 가진 명태이지만, 내 어릴 적 동태에 관한 기억은 서랍 속의 물건처럼 수시로 불려 나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생된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동태는 물론, 북어, 코다리, 노가리, 황태 등등, 명태네 방계 친척들을 볼 때마다 소환되는 추억이고, 우리 형제들이 모여 지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단골이 된 지도 오십 년쯤 된다. 남편을 비롯한 주변 몇몇 지인들은 하도 여러 번 들은 이야기인지라, 그 일을 함께 겪은 기분이라고도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겨울 방학이 시작되어 마음이 울렁거리던 날, 마침 장날이었다. 바로 위 언니와 세 살 아래 남동생과 놀거리를 찾아다니다, 장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에게 큰집에 가려느냐고 묻더니, 시장 난전에서 동태를 사, 누런 종이에 싸서 들려주셨다.

큰집은 바로 이웃한 면에 있어, 버스를 삼십 분쯤 타고 가면 되는 거리라서 우리는 신나서 버스를 탔다. 나는 길을 잘 몰랐지만,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었으니, 아무 걱정이 없었고, 언니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동생 또한, 누나들이랑 가는 길을 염려할 이유가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우리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우왕좌왕하다가 잘못 접어든 길 가 집 앞에서 커다란 검은 개가 컹컹 짓는 바람에 잡았던 손을 놓치고 혼비백산 흩어졌다.

큰집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 시간을 넘게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산골이었는데, 어디든 간다는 게 좋은 나머지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했었다. 서로 장난치며 한참을 걷다 보니, 동태를 묶은 새끼줄이 헐거웠다. 돌아보니 멀리 검정 고무신처럼 생긴 동태 한 마리가 길바닥에 엎드려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주워와서 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태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흙 묻은 동태를 다시 주워 꽁꽁 묶고, 몇 걸음만 걸어도 미끄러져 내려와 흙바닥을 뒹굴었다. 궁리 끝에 너덜너덜 젖어 찢어진 누런 종이를 벗기고, 흙투성이 동태를 한 마리씩 손에 쥐고 걸었다. 손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빨개져 시려왔다. 나는 그냥 집에 가자고 울었고, 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멀다고 말했다. 저수지를 지나는 길옆에 앉아, 동태 네 마리를 다시 단단히 묶고, 너덜거리는 종이로 흙을 닦았다. 다시 떨어질세라 조심조심 걸어 큰집에 도착해 새끼줄에 매달린 흙투성이 동태를 내밀었다. 동태를 받아든 큰엄마는 "아이고 세상에!"를 연발하셨다.

큰집 사촌들과 저수지 얼음판을 달리고,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쫓아다니다 들어와 마주한 저녁상엔 동태찌개가 올라와 있었다. 우린 동태찌개를 먹으며 키득거렸다. 큰엄마는 동태에 흙이 잔뜩 묻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사촌들은 동태 알이 엄청 많다며 잘 먹었다.

공통의 추억을 가졌다는 것은, 같은 시대를 같은 느낌으로 살았다는 것, 그날 동태를 주로 들고 간 사람은 언니이었을 텐데, 내가 들고 다닌 것 같고, 동생은 제가 들고 갔다 말한다. 동태에 묻은 흙도 서로 본인들이 닦아냈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고생스러운 일 앞에 놓인 형제는 한마음이었는가 보다. 춥고, 손 시리던 시간도 어느새 따뜻한 기억으로 추억된다. 그러니,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여전히 배꼽을 잡을 수 있나 보다.

식탁에 동태찌개 냄비를 올려놓으며 어느새 내 입꼬리가 실룩거렸나 보다.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낸다.

"그래서…, 사촌들은 아직도 그날 먹었던 동태찌개의 실체를 모르나?"

하하하, 그건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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