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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마음을 모아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 빚는다는 말은 몸으로 하는 일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더하는 말이다. 도자기 빚기에 정성을 더하고, 술을 빚고, 송편을 빚는 일에 사랑을 더한다. 빚는다는 말은 만드는 것 너머의 어떤 것을 품고 있다.

올해도 형제들은 만두를 만들어 먹기 위해 모였다. 어머니가 살던 집에서 지난 늦가을 김장 때 땅속에 묻어 두었던 김치를 파내어 뚝딱뚝딱 다져 만두를 빚는다. 한쪽에선 밀가루 반죽으로 만두피를 밀고, 만두소를 가득 채운 큰 함지에 둘러앉아 각양각색으로 만두를 빚는다. 가스 불 위 찜통에선 김이 폭폭 올라오며 연신 만두가 익어가고, 다른 한쪽에서 갓 쪄내 채반에 수북이 담긴 김치만두를 먹는다.

뜨끈뜨끈한 만두를 한입 베어 물고 뜨거운 입을 벌려 하얀 김을 내뿜으며 먹는 일은 떠들썩한 축제이자 우리 형제들이 어릴 적 추억을 복기하는 방식이다. 형제들의 기억 속에서 무한 반복 재생되는 사건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즐거움은 배가되고, 아픔은 물론 힘들던 기억조차 사라진다. 하지만 올해에는 반복될수록 빛나는 추억들 속에서 언뜻언뜻 반 박자쯤 늦어지는 호흡이 있음을 느낀다. 만날 때마다 수없이 이야기하던 이야기들 사이에 흐르는 엇박자의 정체를 우리는 안다. 그렇게 남겨진 피붙이들은 어머니와 각각의 기억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시끌벅적함 속에서 빛나는 추억으로 만들어 가게 될 것을···.

통증 같은 그리움을 감당할 수 없을 때도 만두를 빚었다. 겨울에는 김치를 다져 김치만두를 빚고, 여름이면 호박을 채 썰어 넣고 편수를 빚었다. 마당가에 족두리 꽃이 하얗거나 분홍이던 손톱 같은 꽃잎을 떨구던 날, 깨알 같은 족두리 꽃 씨앗이 작은 깍지 속에서 눈물처럼 터지던 날, 하얗게 만두를 빚어 쟁반 위에 조로록 늘어놓으면 마음이 순해지곤 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눈에 띄게 진행될 무렵 자식들의 일상도 삐걱거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 단축번호를 눌러 "만두 만들어 놓았으니 언제 좀 다녀가라"는 전화를 하고 또 하고, 계속하셨다. 우리는 일을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말하며 어머니의 핸드폰 단축번호를 두 자리로 바꾸어 놓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휴대폰 거는 일조차 잊어버렸다.

기다려 주리라 생각했다. 조금 덜 바쁠 때, 조금 더 성숙해진 마음으로 점점 변해가는 어머니를 보듬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간간이 치매에서 벗어나 뒤숭숭한 마음을 만두 속에 담았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두를 빚는다. 그럴 때 내가 빚는 만두는 대나무 숲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다던 그 대숲이다. 시린 바람만 오가는 대숲에서 온몸으로 흔들리는 댓잎처럼 울고 싶다.

기름기 적은 살코기를 갈아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고, 김치를 다지듯 감정의 소용돌이를 부서져라 두들겨 다진다. 다진 김치를 면포에 담아 힘껏 눌러 짜서 포실하게 담아놓고, 두부도 뜨거운 물에 데쳐 물기를 짠다. 잘게 썬 부추며 숙주도 삶아 지난 추억의 부스러기들과 한데 섞는다. 마지막으로 들기름을 넉넉히 넣어 버무려 만두소를 만든다. 보자기처럼 넓게 만두피를 밀어 이리저리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는 마음을 토닥여 넣는다. 통증으로 남은 그리움을 한 숟갈 덜어내어 만두 속을 가득 채우고 꼭꼭 오므려 주름을 잡는다.

가지런히 빚어진 만두를 보며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애야, 너는 예쁜 딸을 낳겠구나."

터질 듯이 빵빵했던 만두는 더운 김에 몸을 익혀 차분해졌다. 어느새 투명해진 만두는 따뜻한 맛으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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