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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몇몇 사람들의 비리 소식에 며칠째 텔레비전이 시끄럽다. 그들에 관한 수사가 계속될수록 권력과도 뒤얽혀 있음이 속속 드러난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의 치부(致富)는 정당하지 못하다. 욕심 속에 매몰된 정의로움은 숨이 끊긴 지 오래고, 그들은 권력과 돈을 움켜쥐고 변명하기 바쁘다. 이쯤 되면, 가진 게 없더라도 바르게 사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던 사람들은 불편한 의문을 품고, 자신도 모르게 분노하게 된다. 그리스의 농부 크레뮐로스처럼.

기원전 388년, 아테네에서 공연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도 정직한 농부 크레뮐로스는 지금 우리와 같은 이유로 분개한다. 자기처럼 정직한 사람들은 늘 가난한데 비해,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들은 점점 부자가 되는 것에 화가 났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외아들이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착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나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 델포이의 신탁소로 찾아간다.

이에, 아폴론 신은 그에게 신전을 나서다가 맨 먼저 만나는 사람을 그의 집으로 모시라고 일러준다. 어라, 그런데 그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다. 그 맹인이 말하기를 자기는 부의 신인데 제우스가 인간에 대한 악의에서 착한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하고 부를 나눠주도록 자기를 장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정당하게 부를 누릴 수 있도록 크레뮐로스는 부의 신을 의술의 신에게 모시고 가 눈을 뜨게 하려 한다. 하지만 가난의 신이 그들 앞을 막아선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면 더 이상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아 지금보다도 더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하지만, 가난의 신은 크레’ƒ로스를 설득하지 못했고, 마침내 부의 신은 눈을 뜬다.

크레뮐로스는 눈을 뜬 부의 신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놓고 혼자서만 거부가 될 수도 있었지만, 공익을 위해 사익을 포기한 덕분에 정직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사악한 사람들은 가난뱅이가 됐다. 남을 팔아 살던 밀고자는 쫄딱 망해 부의 신에게 따지러 왔지만, 부의 신은 눈을 뜨고 보게 된 세상에서 제대로 보고, 제대로 부를 나눠 주었다. 올바른 부의 분배가 시작돼 정직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2천400여 년 전, 그 시대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권력자들을 풍자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그리스사람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부의 신은 눈을 떴다지만, 우리의 세상에서 부의 신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나 보다. 부의 편중이 극심해지고,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갈수록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는 부의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계약직 직장이라도 얻고자 몇백 명의 경쟁자와 싸워야 하는 젊은이가 다수인 반면, 겨우 몇 년 다닌 회사에서 대리의 직함으로 수십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힘없는 아비들마저 절망하게 만든다. 그렇게 사업가들과 결탁한 권력가들은 그들만의 부를 축적하느라 정의를 묻어버렸다. 코로나로 살기가 버거워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주네, 못 주네 하며 국회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그들 중에 있다 하는데, 가증스러운 가면을 쓴 그들을 부의 신은 왜 아직도 보지 못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셈법으로 자신들만의 부를 쌓는 위정자들에게서 부정한 부를 거두고, 정직과 정의로움을 알아볼 수 있는 크고 밝은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할 부의 신은 어디서 잠자고 있는가. 오래전 떴던 눈을 애써 감은 채,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가. 아테네의 정직한 농부처럼 잠자는 부의 신을 흔들어 눈뜨게 할 우리의 크레뮐로스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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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