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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연필을 선물 받았다. 질이 좋아 자주 쓰는 연필이라며 그림을 그리는 지인이 보내왔다. 선물용 세트에는 진하기 종류별로 연필 몇 자루와 연필깎이, 리필용 지우개, 그리고 연필심 부분에 끼우는 포인트 가드에 영문 이름까지 각인이 되어 있다.

연필은 존스타인백이 가장 사랑했다는 그 연필이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즐겨 썼다나. 지인은 여러 나라의 유명한 창작자들이 이 연필을 쓰고 있더라고, 그러니 나에게도 번득이는 영감이 마구마구 솟아나길 바란다고 했다.

누구나 유년의 기억 한 모퉁이에, 연필에 관한 기억 한 조각쯤은 갖고 있으리라. 양철 필통 속에서 달그락거리던 몽당연필, 거친 갈색 나무가 깎여 떨어지며 속절없이 부러지던 검은 심, 연필을 깎다가 베인 손가락에서 몽글거리며 솟아나던 빨간 피, 글씨 쓰는 중간중간 혓바닥을 내밀어 침을 묻혀야 그나마 진하게 써지던 메마른 연필, 장난감 집처럼 생긴 친구의 연필깎이의 작은 구멍으로 연필을 넣어 돌릴 때, 꽃잎처럼 얇게 말려 떨어지던 부러움….

연필에 대한 추억을 넘어 맹목적인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의외로 주변에 많다. 글은 노트북을 두드려 쓰고 있지만, 아이디어의 메모나, 희미한 기억은 아무래도 노트에 연필로 긁적여 소환해야 선명해진다. 나는 다른 필기구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유독 연필에 애착이 있다. 연필을 사은품으로 내건 이벤트에 홀린 듯 끌리고, 문방구 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여행 중 머문 호텔에 비치되어있는 연필을 욕심내 가방에 넣어오기도 한다.

연필 끝에 달린 리필이 가능한 납작한 지우개가 마음에 든다.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늘 같이 있겠다는 약속 같다. 지우개가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연필의 매력은 다른 필기구와 비교 불가다. 의식하기는 어려워도 연필 꽁지의 지우개를 믿기에, 우리는 처음의 자음을 힘주어 눌러 쓸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아이의 공부는 연필로부터 시작된다. 연필의 가장 큰 미덕은 '지워지는 것'에 있기에, 연필의 본질을 정의하는데 연필 꼭지에 달린 지우개는 기여도가 매우 크다.

연필 한 개를 집어 깎는다. 광택 없는 기다란 블랙 바디가 세련되어 보인다. 가는 꽃잎처럼 떨어지는 나무 냄새에 마음이 여유롭다가, 날카로운 금속 칼날이 검은 심에 닿으며 왼손 엄지로 전해오는 미묘한 떨림에 긴장된다. 무언가 경건해지는 순간이다.

내친김에 뾰족한 연필심을 세워 글을 써 본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반듯하게 글자를 쓰다 보면, 앙다문 입술처럼 마음도 결연해진다. 글의 제목을 적을 때에는 최대한 바르게 쓴다. 글을 쓰는 느낌도 담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도 잠시뿐, 이내 글씨는 습관처럼 헝클어지고 만다.

누가 뭐래도 연필로 글씨를 쓸 때는 필기체가 제격이지. 누런 종이 위를 지나는 서걱거리는 소리는 물처럼 흘러 파도 같은 기호를 남겨야 제맛이다. 시간이 흐른 뒤 읽어 볼 때, 본인도 못 읽을 악필이어도 괜찮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손이 느리니, 연필은 늘 바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내가 무엇을 쓰든, 그것은 나다. 누더기를 걸친 듯 비루한 글도, 칼을 삼킨듯한 독기로 사람의 마음을 베어버리는 글도, 모든 글은 쓴 사람을 대변한다. 그러기에 글을 쓰기 전 연필을 깎는 행위는 일종의 명상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오롯이 느끼며 천천히 검은 심을 간다.

김훈 선생님은 아직도 연필로 글을 쓴다던데, 막연함 속의 답답했던 것들이 언어가 되어 연필 끝에서 거미줄처럼 술술 나오는 걸 상상한다. 쉼 없이 자음과 모음이 나와 글자가 되고, 단어가 되어 정교한 다각형의 무늬를 만들어 줄에 매단다. 언어로 만든 거미줄은 수없이 많은 이슬을 매달고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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