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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커피집에 앉아 있다. 핸드드립만 고집하는 집 주인은 '이보다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려면 외계인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벽에 써 붙여놓았다. 집기라고는 작은 가스레인지가 전부인 아주 단출한 주방이다. 주인은 숯불에 원두를 볶고, 일 인분씩 핸드밀을 돌려 원두를 갈아 세상 진지한 자세로 커피를 내린다. 그는 숨을 참으며 집중하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그가 숨을 뱉는 순간을 기다리며 호흡을 멈춘다. 얼른 목이 긴 물 주전자를 '탁!' 하고 내려놓아야 할 텐데, 오늘따라 그의 호흡이 길다.

허름한 동네의 허름한 가정집을 개조한 실내는 넓지 않다. 두세 개의 테이블과 그리 편하지 않은 의자가 몇 개 있다. 손님이라고는 모처럼 휴가를 맞아 오후의 여유를 찾아 나선 나와 할머니, 이렇게 둘 뿐이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빨간 조끼와 보라색 일 바지를 입은 할머니가 앙상한 손으로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씩 아껴가며 마시고 있다. 할머니 옆에는 지팡이가 있다. 네발 달린 은색 지팡이와 가장자리를 따라 금색이 빛나는 커다란 모란꽃무늬 커피잔이 묘하게 어울린다. 할머니는 지팡이와 나란히 앉아 커피를 나눠 마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별일 없이 이삼십 년이 흐른다면, 나도 저렇게 순수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알고 있는 듯. 혹은, 세상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로···, 오후임에도 할머니가 카페인을 즐겨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입고 있는 보라색 일 바지와 상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동네의 시간은 느릿느릿 가다 잠시 쉬는 중인가 보다. 담벼락에 그려진 얼굴이 큰 사람들이 그렇고, 모퉁이를 돌아 비스듬히 누워 있는 맨드라미의 무거운 머리가 그러하다. 시간은 맨드라미 붉은 머리 위에서 꼬닥꼬닥 졸다가 바람 한 자락에 화들짝 놀라, 그제야 생각난 듯 주섬주섬 챙겨서 가던 길을 갈 것 같다.

유리로 된 출입문 맞은 편에 **상회라는 간판이 보인다. 파란 바탕에 흰색 페인트로 커다랗게 쓴 가게 이름은 처음 개업할 때의 소망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이뤄 준 듯 태연하다. 앞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할머니가 저 가게의 주인일지 모른다고 잠시 생각했다.

창 너머에 가게 안에는 물건이 몇 개 없어 보인다. 화장지가 한 더미 쌓여있고, 소주며 맥주 상자 두어 개와 아이스크림 통, 그 외 잡다한 과자봉지가 고집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 라면 한 개 사 오면 딱 좋을 것 같은 가게이다. 라면을 사고, 단팥이 들어 있는 하드를 한 개 입에 물면 더 어울리겠다. 물론, 초록색 츄리닝 바지에 무릎이 튀어나와 있다면 완벽한 그림이겠지.

흰둥이가 가게 안에서 짧은 줄에 묶인 채 내다보고 있다. 주인이 잠깐 외출하느라 안에 묶어 놓은 것이려나. 제 할 일을 잃어버린 눈빛이다.

마침, 주인이 장미무늬가 화려한 금테 두른 커피잔에 넘치도록 담은 커피를 천천히 들고 와 내 앞에 놓고 간다. 검은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다. 햇빛이 무료한 날 창가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 할머니는 커피잔을 들고, 조심스레 '호로록' 한 모금을 마셨다. 나도 '호로록' 마신다. 할머니의 커피잔을 감싸 쥔 왼손 가운뎃손가락에서 은빛 쌍가락지가 반짝 빛났다. 그때 나는 팔꿈치로 커피잔을 '툭' 건드려 남은 커피를 엎질렀다. 카페 안의 두 테이블에는 비슷한 듯 다른 한가로움이 떠돈다. 할 일을 다 마친듯한 여유로움과 그 여유로움을 탐하는 조바심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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