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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아침에 일어나 나와보니, 식탁 위에 두릅이 한 주먹 놓여있다. 아침잠이 줄어든 남편이 축사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길에 꺾어다 놓은 듯하다. 어느새 때가 지난 두릅은 가시가 숭숭 나 있어, 다듬는 손가락을 찌른다. 풋내 어린 새순에 억센 가시를 먼저 달고 있는걸 보니, 두릅이란 식물도 자연이 준 몫을 살아내기가 사람 못지않게 녹녹치 않은가보다. 두릅의 향이라야 아릿한 풋내 정도라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향긋한 단내를 풍긴다. 오호라. 두릅 순 사이 팥죽색 올망졸망한 으름 꽃 한 가지가 숨어 있다. 콩알만 한 으름 꽃송이가 내뿜는 향은 향기의 대명사인 장미를 능가한다.

향기라는 단어와 함께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가 떠 오른다. 오래전 개봉되었던 '향수'라는 영화다. 비린내 진동하는 생선 시장 뒷골목에서 천재적인 후각을 갖고 태어난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 냄새가 없다. 누구나 갖는 고유의 체취가 없어서인지 향기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우연히 마주친 여인에게서 맡은 향기였다. 그 향기를 재현해 완벽히 소유하고자, 수없이 여인들을 죽여 향기를 채집해 향수를 완성하지만, 주인공은 끝내 향기처럼 세상에서 증발해버린다. 주인공이 미친 듯이 찾고자 했던 그 향기가 늘 궁금했다.

대부분 생명체에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두릅에는 두릅의 향이 나고, 씀바귀는 씀바귀의 씁쓸한 냄새를 갖고 있다. 사람에게도 각자 고유한 체취가 있어서 체취만 맡고 개인의 이상형을 가려내는 실험을 본 적 있다. 커플 매칭 성공률도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체취라는 게 건강과 관련이 많겠지만, 호르몬의 영향도 있단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주인공이 맡은 것은 향기가 아닐 수도 있다. 여자의 체취일 수도 있고, 아님, 최면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식었을 때, 처음 설레게 했던 상대의 향기가 견디기 힘든 냄새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너한테서 냄새 나."라는 말은 "너의 먹는 모습이 보기 싫어졌어."만큼이나 충격적인 이별 법이다.

실례로, 젊었던 날 내 친구는 알콩달콩하던 남자친구와 관계가 소원해지는가 싶더니, 남자친구를 철천지원수로 삼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친구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단다. 그 남자친구는 이미 몸속의 호르몬이 변해, 사랑의 감정을 거둬들인 후였으리라, 이별을 말하러 찾아간 여자의 집 앞, 반가운 마음에 밥 먹다 뛰어나간 여자친구에게서 나는 김치 냄새가 이별의 트리거로 작용했으려나, 이후 내 친구에게 '냄새'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냄새와 향기는 한 끗 차이도 안된다. 냄새를 맡는 사람의 심리가 어떠냐에 따라 결정되기 쉽다. 그 남자친구는 변해버린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비겁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상처를 남겼다.

어린 두릅은 향이 덜하지만. 점점 지날수록 향기도 강해진다. 한겨울 추위를 고스란히 견뎌내 겨우겨우 내민 새순을 따내면 그 상처 부위에 맑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며칠이 지나면 그 옆자리에 또 다른 순을 밀어 올린다. 그것마저 사람이 따면 다시 올라오는 새순은 향이 진하다 못해 쓴맛을 내고, 연하던 가시를 단단히 키워 방어적으로 변한다. 그런 시련을 겪거나, 자존감을 다친다면 식물이든 사람이든 독기를 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두릅을 다듬으며 문득 든 생각,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사람도 오래될수록 향이 짙어진다. 향이라는 게, 고집일 수 있고, 아집일 수도 있다.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면 신념일 수도 있겠다. 나이와 함께 짙어지는 자신만의 향기를 약으로 삼킬지 독으로 뱉을지 선택은 자신의 몫일 터, 줄줄이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를 관찰하듯, 스스로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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