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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어느 날, 작은 글자 읽기가 귀찮아졌다고 느낄 즈음, 당신은 거울 앞에서 검은 머리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흰머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핸드폰을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는 일, 전자제품을 새로 들이거나, 조립용 가구를 들여오는 일들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어느새 당신은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나이를 헤아리느라, 작아지는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이 흐려지고 귀가 어두워지는 건, 나이 들어 늙어가는 인간에 대한 조물주의 배려라 했던가요, 조물주께서는 당신의 삐걱거리는 관절을 보호하느라 찻잔 바닥의 얼룩이나 혹은, 구석을 뒹구는 먼지가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시력을 조절하셨다지요. 뒤에서 소곤거리는 사람들 말보다 자신의 경험을 믿고, 소신껏 살라고 귀에 필터를 달아 주셨다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 앞에서 진중한 판단력은 젊은 순발력 못지않은 덕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어가는 나이만큼 자신감도 늘어나면 좋으련만, 새로운 일 앞에서는 더욱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며칠 전에는 별 불편 없이 사용하던 전기압력밥솥이 열리질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눌러보아도 "잠금기능이 설정되었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지요. 서랍을 뒤져 밥솥 설명서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밥을 해 온 세월이 얼만데, 그깟 설명서는 보지 않아도 다 안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버렸나 봅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보아도 '잠금 기능을 해제'할 방법은 막막했습니다.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분가해 사는 아들이나 며느리가 오기를 기다려 봐달라고 하는 방법이 있을 거고요. 밥솥을 끌어안고 서비스 센터로 달려가 고쳐오는 방법. 또는 전화를 걸거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해결이 되겠지요.

당신의 선택은 어떠한가요, 설마, 첫 번째 예처럼 자녀들이 와서 고쳐주리라 믿고 기다리는 것을 선택하셨나요, 그렇다면 큰일 났습니다. 당신의 며느리살이는 '따논당상'일 겁니다. 시집살이의 열쇠는 정보에 있다지요. 요즘에야 시집살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만, 여전히 관계의 무게추는 어느 쪽으로든 기울기 십상이니 말입니다. 살림 정보라는 게, 경험에 의한 숙련도와 노하우로 얻었을 터이니까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경험치가 다르니, 며느리가 열세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었겠지요. 반면, 요즘 살림살이의 대부분이 전기제품이고, 전자기기의 사용을 잘하면 살림이 쉬워지는 세상에서 시집살이의 주체와 객체가 바뀌기도 하거든요.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전해지던 정보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랍니다.

누구나 고상하고 우아한 삶을 꿈꿉니다. 기품있게 말하고, 따뜻하게 배려하고, 남들에게 존중받으며 사는 일은 오히려 노년의 삶에 더 중요하지요. 하지만, 고장 난 밥솥을 안고 쩔쩔매는 노인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돌봐 주어야 할 불쌍한 대상으로 보이지는 말아야겠지요. 전자기기가 그득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자녀들이 첨단 기기의 사용법을 알려줄 때마다 주눅 들지 않는 꿋꿋한 마음이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저녁 먹으러 들어 온 남편에게 밥솥을 고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밥 한번 해보지 않은 남편이 전기밥솥에 대하여 알 리 없지요. 그러니 물었지요. 밥솥이 고장 났으니, 고구마를 찌거나 라면을 끓여도 다 이해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이거든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취소 버튼을 5초 이상 꾸욱 누르면 잠금이 풀린다고 되어 있었지만 안되더군요. 잘 보니, 기종이 다른 밥솥이네요. 우리 밥솥에 대한 설명은 없었어요. 하지만, 저녁을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는 바로 밥솥 뚜껑을 열 수 있었어요.

어떻게요? 전기 코드를 확!! 뽑아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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