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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커피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마주 난 잎의 겨드랑이가 불룩 해진지 한참 후에 밥풀 모양의 길쭉한 꽃 몽우리가 달렸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날 서둘러 하얗게 피어났네요. 몇 년의 기다림 끝에 보이는 작고 희미한 향기가 꽤 감동적입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커피나무 옆에 앉아 봅니다.

도토리 한 알에는 도토리나무가 들어있다는 말이 있듯, 커피 한 알에는 커피 한그루가 오롯이 있습니다. 그리고 붓 대롱에 숨겨 왔다던 목화씨처럼 먼 옛날 어느 선구자의 허리춤에서 숨을 죽이며 바다를 건넜을 커피나무 선조의 이야기도 있을 테지요. 삼 년 전 강릉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길러낸 나무입니다. 이 커피나무에는 블랙홀처럼 뚫린 마음으로 한없이 빨려들던 하늘이 있고, 바다를 지나 호수를 휘돌고 경포대 처마에서 머뭇거리던 그 바람도 들어있지요. 커피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함께 들었던 음악과,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휘젓던 차 스푼의 달그락거림까지,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추억이 우르르 몰려나와 마음을 흔드네요.

커피 박물관에서 커피 체리를 맛보고 발라낸 커피 씨앗 두 알을 장난처럼 휴지에 싸서 배낭에 넣으며 잘 키워 수확한 커피를 함께 마시자 했었지요. 물에 불린 커피 알을 묻어둔 지 석 달이 되도록 싹이 나오지 않아 흙을 후벼 보기도 했답니다, 어렵게 내민 어린싹을 강아지들이 물어뜯은 일도 있었고요, 두 알의 커피콩에서 나온 네 개의 화분을 지인들과 하나씩 나눴습니다. 그중 두 화분은 아프리카 어디쯤 있을 본향을 그리다 죽었고, 한 화분의 주인은 지금 멀리 출타 중이라 그 커피나무 안부를 알 수 없어요. 그중에 화분 하나가 내게로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지인이 키우다 새로 옮긴 사무실에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고 해서 데리고 왔으니, 애틋한 마음에 잎이 말라 떨어질 때마다 신경이 더 쓰이던 중이었어요.

커피 꽃말은 '너의 아픔까지 사랑해' 랍니다. 커피는 아침잠에서 허우적거리는 정신을 데려올 때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서성일 때도 필요하지요. 외로울 때나, 슬플 때 찾게 되는 게 커피이기도 합니다. 본연이 가진 단맛, 쓴맛, 신맛, 떫은맛으로 위로를 건네는 커피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꽃말이 있을까요. 숭고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애처로운 꽃말이기도 하네요. "상대의 아픔과 나를 아프게 한 너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 이쯤 되면 커피의 사랑은 보통의 사랑을 뛰어넘습니다.

활짝 핀 하얀 꽃에는 다섯 개의 수술이 있고, 그 가운데 기다랗게 올라온 암술은 끝이 갈라져 있습니다. 어떻게 수분이 이뤄지는지 알 수 없네요. 비 갠 장마철 아침, 호박이 달리지 않은 꽃을 꺾어 밤톨만 한 호박이 달린 꽃 안에 꽃가루를 발라 주시던 어머니처럼 꽃 가운데를 붓으로 살살 쓸어주고 싶은 건 저의 욕심이겠지요.

어떤 이는 나무의 목표는 꽃이나 열매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살다 보니 꽃이 피는 것이고, 살다 보니 열매를 맺는 거라고, 나무가 하고 싶지 않아도 그리되는 거라고 말합니다.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 일이 식물의 일이라면, 사람의 일은 가만히 보아주는 것뿐이라 합니다.

자연스러움과 관심의 경계에서 커피 꽃을 들여다봅니다.

자세히 보니, 꽃 모양은 길거리에 흐드러진 이팝나무 꽃을 닮은 것도 같네요. 다닥다닥 붙은 꽃이 쌀밥이기를 바랬던 이름처럼, 밥만큼이나 커피를 자주 마시는 저에게 이팝나무 못지않은 포만감을 주는 꽃이네요. 이 나무가 내내 초록 잎만 무성하고 붉은 열매 한번 열리지 않는대도 나이테처럼 해마다 추억을 새겨 가겠지요.

활짝 열린 거실 창으로 오월을 지나는 바람이 불어오네요. 이 작은 꽃잎과 연한 향기 한 자락 바람에 얹어 그대에게 보내려 합니다. 부디 반갑게 받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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