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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우리 집 봄은 송아지의 계절입니다. 소에게도 봄은 새끼 낳기 딱 좋은 때이지요. 농장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화르르 피어나는 꽃을 시샘하듯, 연이어 태어난 어린 송아지들이 축사에 북적거립니다. 난 지 두어 달쯤 되면 송아지들의 저지레는 절정에 이릅니다. 성긴 칸막이 사이로 빠져나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볏짚이나 건초 위에 실례해 놓고 뭉개기도 합니다. 젖을 뗄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지요. 남편을 도와 덩치 큰 놈들을 골라 송아지 축사로 옮겼습니다.

그저 신난 송아지들은 포장으로 유도해 놓은 길을 따라 후다다당 몰려 들어갑니다. 칸막이 문이 닫히는 순간에도 천방지축 뛰어다닙니다. 저녁 무렵 어미에게 젖을 먹으러 가는 길이 막혀 있음을 알았을 때, 그제야 큰일이 일어난 걸 알아차린 듯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미를 부르는 송아지들의 "오옴메~!" 소리가 점점 높아집니다. 어미 소들도 애가 타는지 젖은 목소리로 송아지를 부릅니다. 평온했던 농장에 때아닌 이별의 소용돌이가 불었습니다. 한데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젠 아기가 아니라 어른으로 대접받고 살 시기가 되었음을, 어른이 되는 길에는 이별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을 송아지들도 곧 알게 되겠지요.

어미와 새끼들의 이별이 더욱 슬퍼지는 밤에는 산새들도 숨을 죽입니다. 덩달아 마음이 편치 않던 사나흘 동안, 하얀 달이 부은 얼굴로 내 창문을 들여다보고 가곤 했습니다. 송아지들이 점차 안정되고 어미를 잊어갈 무렵, 소란스럽던 농장은 잠잠해집니다. 가끔 목이 쉬어 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어미를 찾는 송아지도 있긴 합니다만, 대개 송아지들은 어미와 떨어진 지 삼사일쯤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저희끼리 즐겁습니다.

그런데, 참 별일이지요. 저희들 집에 있어야 할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옆에 누워 자고 있습니다. 엊그제 젖을 떼서 큰소리로 울고불고하던 녀석인데 말입니다. 어디로 탈출했는지 흔적이 없습니다. 촘촘한 칸막이 사이를 빠져나올 수 없고, 제 키보다 높은 곳을 뛰어넘었을 리도 없습니다. 잠든 송아지 얼굴은 어미의 젖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애타게 찾던 어미를 만나 먹는 젖이 얼마나 달달 할까요. 안도감과 포만감에 잠은 또 얼마나 달콤할까요, 구부려 접은 앞다리에 얼굴을 얹은 어미 소는 새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긴 눈썹 아래 커다란 눈에서는 애틋함이 묻어나네요.

인공수정으로 잉태된 이 송아지는 아비 소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요즘 태어나는 모든 송아지가 그러합니다. 송아지들의 아비는 수십억대를 웃도는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들이지요. 등록번호 KPN-0000로 표시되어 세 자리 혹은, 네 자리의 숫자로 우수한 혈통임을 증명할 뿐입니다. 하지만, 어미들은 선 한번 본 적 없고, 새끼들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아비지요. 그렇게 태어난 송아지이니 시린 마음에 얼마나 애지중지 길렀을까요. 어미의 큰 눈이 자꾸만 껌벅이는 의미를 짐작하고도 남지만, 언제까지 곁에 둘 수는 없으니 다시 제자리로 옮기긴 해야 하지요.

한번 탈출한 송아지를 다시 몰아넣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럿이 몰려다니다 얼떨결에 갇혀버린 일을 기억하는 거겠지요. 하는 수 없이 끈으로 묶어 끌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뒷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단단히 버티는 송아지를 살살 달래 봅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우는 송아지를 보니, '어미 옆에서 하룻밤만 더 재우고 내일 데리고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송아지 묶은 끈을 바짝 당기고 있는 남편을 달래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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