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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과태료부과 통지서를 받았다. 선명하게 찍힌 자동차 번호로 보아, 검게 처리된 음영 속에 운전대를 쥔 사람은 내가 맞다. 터널이 시작되는 CCTV 앞에서 제한속도 40키로를 12키로나 초과했단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친 후에야 새로 생긴 카메라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 곳이다. 그런데도 종종 그 과속단속 카메라가 보내는 사인은 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요즘은 어디를 다녀도 시선이 너무 많다. 저들은 내가 보아주기를 바라고, 제가 나를 당연하게 본다. 자동차를 타고 찬거리라도 사 오려면 예닐곱 번의 고정 카메라에 찍힌다. 빨간 눈을 부릅뜨고 있는 동네 입구 방범용 CCTV를 지나면, 과속 카메라를 지나야 하고 또, 삼거리 신호등 사이에 둥그런 눈을 한 카메라를 지나야 한다. 그뿐인가? 마주오는 차는 물론이고,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의 블랙박스에도 나와 내 차는 찍힐 테고, 사방에서 찍고 찍힌다. 이는 CCTV의 여러 속성 중 '감시'에 무게가 기운다.

우리 목장에 처음 CCTV를 달았을 때는 방범이 목적이었다. 지금 소들에게는 사람의 주민번호처럼 이력제 번호가 있다. 그래야 매매든, 도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소를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으니,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속이 빈 가짜 CCTV라도 달아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밖을 향한 껍데기뿐인 둥그런 렌즈를 통해서라도 얻고자 한 것은 '경고'이다. 언제나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도둑질하러 올 생각일랑 아예 접으라는 대찬 으름장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예도 있다. 출산 예정일이 지난 암소 때문에, 남편은 자주 CCTV와 연결된 휴대폰을 켜고 암소의 동태를 살핀다. 집에서 쉬는 동안에는 CCTV에 눈을 맡긴다. 새벽에 확인한 핸드폰에서 암소의 행동이 수상쩍어 보였다. 남편은 CCTV에 연결된 텔레비전으로 소의 동태를 확인하더니,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나는 거실 텔레비전으로 암소의 출산을 지켜보았다. 소들이 안다면 지나친 사생활 침해를 견딜 수 없다고 데모라도 할 일이겠지만, 축사 곳곳에 설치한 CCTV가 없었다면, 축사에서 밤을 지새울 뻔했으니, 이때 CCTV의 기능은 농장주와 역할 분담이다. 사람의 눈을 대신해서 소들을 살펴본 것이다.

언젠가 서울서 공부하던 아들이 잠자기 전 휴대폰으로 소들을 구경하고 잔다던 말이 생각난다. 제 핸드폰에도 CCTV앱을 설치해놓았다 한다. 하루가 힘들거나, 집 생각이 난다거나, 식구들이 보고 싶을 때, 휴대폰을 열어 평온히 앉아 되새김질하는 소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그러다 간혹 운이 좋으면, 축사에서 일하는 아빠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남편은 아이들이 볼까 싶어 간혹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한다. 플라스틱과 쇠로 만들어진 차가운 물성이 사람의 마음을 입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카메라의 눈은 밖을 지킬 때보다 안을 향할 때 그 가치가 커진다. 골목길 가로등은 제 발등을 비춰 늦은 밤 집을 향하는 종종걸음에 안도하는 마음을 준다. 축사 안의 곳곳에 매달린 카메라가 주인 눈을 대신해 소들을 지켜본 덕분에 어린 송아지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다. 지난 가을에 동네 어귀의 외눈박이 방범 카메라가 동네 할머니께서 일 년 동안 애써 농사지은 고추를 자루째 트럭으로 실어가던 도둑을 잡았듯이 말이다.

터널 앞의 CCTV도 동기는 순정했으리라. 처음부터 감시의 눈으로 지켜본 건 아니라고, 벌금을 먹일 생각은 더욱 없었다고, 단지 너무 빠르게 달리는 차들에 이 길은 경사가 심하고 구불거리니까 천천히 다녀야 안전하다고 알려 주려고 했을 뿐이라고, 그럴 마음뿐이었다고,

종종 성가시고 가끔 짜증 나게 하던 눈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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