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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신록의 계절 5월이다. 오월은 가정의 달로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달이다. 형제자매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랑을 풍성히 나누는 5월이기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또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처럼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도 돈독해진다.

녹음이 짙어가는 아름다운 계절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알지 못하는 전화번호다. 머뭇거리다가 핸드폰을 열고 "여보세요?"하는 순간 굵직한 남자 목소리다. 낯선 목소리라 멈칫거릴 때 저는 선생님의 제자 아무개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첫 부임지에서 가르친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보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기에 반갑기도 하고 흥분된 기분으로 통화를 했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는 제자의 말에 코로나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스승을 기억해 준 제자의 마음이 참으로 대견하고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마치 멀리 있는 자식한테서 온 전화처럼 보고 싶고 그리워졌다.

생각해보니 꼭 50년 전의 일이다. 교대를 졸업하고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로 발령받아 갔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집에서부터 약 4 킬로미터를 걸어서 출퇴근해야만 하는 거리다. 교통이 불편했지만 걷는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문화시설이라곤 전혀 없는 산골 학교로 12학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교사로서의 소양은 물론 교육관도 뚜렷하지 못하여 왠지 허술하고 매사 허둥대는 신출내기였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교수 방법을 배웠으나 현직에서는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오직 과거의 교수법을 답습하여 주입식 교육을 주로 시켰다. 학생 수도 많아 책걸상이 교실에 꽉 들어찬 교육 환경에 일제수업을 해야만 했다. 오직 교과서와 칠판에 백묵으로 쓰는 것 외에 교육 자료라고는 괘도가 전부였다. 가끔 학습 자료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다. 학교에 도서실도 없을뿐더러 참고서조차 넉넉하지 않아 애만 태우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끔 위인전이나 전래동화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 줄 뿐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스승의 길은 왕도가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가르치는 일에 충실했다. 보릿고개를 사는 부모들은 나는 못 배웠지만 자식만은 가르쳐야 되겠다는 정신으로 궁핍한 생활이지만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며 산 시대다. 간혹 자녀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선생님 제 자식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선생님의 말이라면 믿어주고 존경해 주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인간미가 넘치고 정겨운 일이었다.

2학년 2반 50여 명의 어린이들 앞에 섰다. 맑고 순수하게 빛나는 그들의 눈빛을 보는 순간 드디어 교사라는 이름표를 내 가슴에 달았다. 그 중에서 유난히 빛나던 개구쟁이 제자의 웃음 띤 얼굴이 생생하다. 그는 자그마한 몸집에 눈이 동그랗고 예쁘장한 얼굴로 옷매무새도 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다녔다. 또한 순발력과 재치가 있으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도 잘하는 귀염둥이였다. 수업 중에 모내기 과정을 설명하는 내게 그가 했던 말이 또렷이 기억 창고에 남아 있다. 매일 출근길에 제자가 사는 동네 앞을 지날 때마다 내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초임지에서 1년 근무한 후 이듬해 집 근처의 학교로 전근되었다. 아마도 나를 기억하는 어린이는 드물 것이라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저학년 때 담임은 대부분 잊기 십상인데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제자가 더없이 고마웠다. 아련한 기억 속에 풋풋했던 내 젊음을 다시 찾은 듯 했다.

몇 주가 지나 이산가족 만나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제자를 만났다. 장년이 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고 흐뭇하여 그저 감탄사만 나오고 어릴 때의 모습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사랑하는 제자는 현재 행정직 공무원으로서 중견 간부로 근무 중이다. 꼼꼼하고 세밀한 그의 성품에 맡은 바 직책에 최선을 다하는 든든한 일꾼이 되었다. 꿋꿋하고 듬직하게 자라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그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후 간간히 안부 전화를 해주는 제자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여 교직생활에서의 보람과 긍지를 새삼 느낀다.

어른을 제대로 공경하거나 효도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시대가 된 오늘날이다. 삭막해져가는 세상, 사랑하는 제자의 연락으로 말미암아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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