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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오곡백과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것을 보면 부자가 된 듯 한 마음이 든다. 그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지만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서늘해지는 날씨 때문에 서둘러 가을걷이하기에 여념이 없게 된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물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덩달아 분주해진다. 농경을 근본으로 살아온 탓인지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춤춘다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어머니는 울안에 있는 빈 터에 서리태 콩, 흰콩, 들깨, 메밀, 배추, 무, 파, 상추, 도라지, 아욱, 시금치 등의 씨앗을 뿌려 가꾸신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의 힘으로는 너무 벅찬 일이다. 어차피 풀을 뽑아야하는데 빈 땅으로 그냥 둘 수 없다고 하며 해마다 봄만 되면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릴 준비를 한다. 씨를 뿌리면 새싹을 틔우고 싹이 자라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냐며 일손을 놓지 않는다. 어머니 건강을 위해서 일을 줄였으면 좋겠는데 몸을 아낄 줄 모르니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기만 하다.

 지난 여름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유난히 심한 가뭄과 무더위에 시달렸다. 그래도 쉬지 않고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어머니의 손길 때문에 콩과 깨가 아주 잘 자랐다. 마당에 심어놓은 곡식들은 키만 크고 때맞춰 열매를 맺는 들깨며 콩꼬투리가 실하지 못하고 쭉정이가 많다. 그 이유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괴로움을 겪어서 열매를 잘 맺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을 보면서 헛농사를 지었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해마다 씨를 넣는 어머니가 때로는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 핑계로 힘에 부치니 그만하시라고 성화지만 어머니는 우리말을 귀 밖으로 듣는다. 매년 거듭되는 일이라 지금은 아예 포기한 상태로 어머니 뜻을 따를 뿐이다.

 수확의 계절이 되면 내가 거두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늘 한 발 늦는다. 며칠 만에 가서 보면 어머니가 어느새 들깨와 콩을 뽑아 해바라기로 세워 놓기에 마음이 부끄럽다. 세워놓은 콩대를 보며 타작 할 걱정을 하는 내게 어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걸 뭘 걱정이냐"고 한다. 그래도 일의 두서를 모르는 난 지레 겁이 난다.

 어머니 몰래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울산에서 토요일 오후까지 근무한 동생은 늦은 시각에 동생 내외와 군대에서 휴가 나온 조카까지 함께 왔다. 남동생은 이른 아침 마당에 비닐멍석을 깔아놓고 콩대를 가지런히 펴 놓은 다음 도리깨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설프다. 그도 그럴 것이 도리깨질을 생전 처음 해 보는 솜씨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옆에 서 있는 조카에게 해보라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도리깨를 받아 들었다. 조카가 휘두르는 폼이 잘못했다가는 제 몸이 맞을 것 같다. 한바탕 웃고 나서 도리깨를 받아든 난 어릴 적 어른들이 도리깨질하던 모습을 흉내 내며 펼쳐놓은 콩대를 향해 도리깨를 내리쳤다. 도리깨를 내리칠 때마다 콩꼬투리가 터지면서 콩이 톡톡 튀어나와 멍석 밖으로 튀어 나갔다. 김용택의 시 '콩 너는 죽었다'를 읊으며 콩이 멀리 튀어 나가도 신이 난 듯 털었다. 잘하지도 못하는 솜씨지만 아무래도 동생과 조카보다 나을 것 같아 도리깨질하는 요령을 가르쳐 줬다. 도리깨질은 힘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요령이 필요하다.

 콩무더기를 한 곳에 모아놓고 켜놓은 선풍기 앞에서 검불과 티를 모두 날려 보내고 실한 알곡을 골랐다. 동글동글하고 굵은 콩알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고 흐뭇해하며 힘든 줄 모르고 바삐 움직였다. 어머니와 둘이 했더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었을 텐데 가족이 모여 함께 일을 해서 힘도 덜 들고 짧은 시간에 두 가지 타작을 끝냈다. 양푼에 담아놓은 들깨와 흰 콩알을 바라보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어림으로 짐작했던 양 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며 어머니와 우리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모든 생명체는 잠자는 시간에 성장한다는 진리를 알아야겠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어두운 밤 뜬 눈으로 별을 보며 잠 한 번 제대로 못 자고 뜨거운 태양빛과 가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으로 열매를 맺어줘서 고맙다. 이 처럼 행복은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어내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얻어진 결과라는 것을 또다시 깨닫게 됐다. 타작마당에서 풍요로운 수확의 기쁨을 안고 행복감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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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