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경자

수필가

단풍잎이 곱게 물들어 가는 시월 그믐께다. 이 때가 되면 왠지 방랑자가 된 듯 어디든 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마침 며칠 후에 기차여행을 떠난다는 지인을 만났다. 기차 여행을 간다는 그와 동행하기로 약속을 단단히 했다. 그 후 소풍 간다는 말만 들어도 밤잠을 설쳤던 초등학교 때처럼 마음이 들떴다. 이것을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동심은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가 보다.

미세먼지도 없는 쾌청한 이른 아침 오근장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에 들어가니 어느 때, 어디라도 좋으니 기차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다. 기차시간에 맞춰 검표원도 없는 개찰구로 나갔다. 자주 이용하지 않은 탓인지 예전과 달리 어색해 하며 제천방면으로 가는 플랫폼을 찾아갔다. 10여 분 정도 기다리니 충북선 무궁화호 열차가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기차가 도착해 승객이 내리자마자 서슴없이 승차해서 좌석번호를 찾아가 앉았다. 열차 안은 너무 조용해서 다른 손님들 눈치가 보여 동행한 지인들과 수다를 떨 수가 없었다. 이 분위기가 바로 시민의식이 향상됐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창가에 앉아 단풍잎 색깔이 산자락마다 아름답게 짙어가는 풍광은 둘레 길을 걸으며 보는 풍광과는 또 달라보였다.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로 피어오르는 안개를 바라보면서 자연속의 풍경을 즐겼다.

6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갈 때는 화력의 힘으로 가는 기차의 화물칸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갔다. 그래도 좋았다. 기차를 처음 탈뿐만 아니라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에 대한 신비로운 마음만 있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두 번째 기차를 탔을 때의 기차 안은 마치 시골의 5일장처럼 떠들썩했었다. 빽빽하게 입석한 여행객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김밥 있어요, 계란 있어요, 오징어 있어요" 하며 외치는 상인들의 소리와 여행객들의 말소리가 뒤섞여 기차 안을 꽉 메웠다. 시설도 좋아지고 시민의식이 높아진 오늘날의 기차안의 풍경은 핸드폰의 벨소리도 무음으로 해 놓아야 할 정도다. 지난날 북적대고 시끌벅적하던 환경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왠지 그때가 몹시 그립다.

충주역을 지나 굽이굽이 산모롱이를 휘돌아 기차는 거침없이 달렸다. 그때 삼탄역 앞에서 멈추는 듯 했으나 쉬지 않고 천천히 달렸다. 작은 간이역은 옛 고향집처럼 느껴졌고 순간 잠자는 내 기억을 일깨웠다. 이곳 지형은 산수의 경치가 빼어난 기암절벽과 계곡물이 맑게 흐르는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옛 생각에 순간 뛰어 내려가 보고 싶었으나 마음뿐이다. 대학시절 동아리모임에서 1박 2일 캠핑을 이곳으로 왔을 때다. 기차가 산모롱이를 돌아갈 때 남학생 몇 몇이서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젊은 혈기에 무서운 줄도 모르고 모험심으로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여름 밤 시원한 자갈밭에 모닥불을 피워 마음을 달궈가며 밤하늘의 별을 세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날. 그 어느 곳보다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으로 풋풋했던 젊은 날 내 마음속에 담아둔 잊지 못할 추억이 어려 있는 곳 중의 하나다.

기차는 어느덧 제천역에 다다랐다. 중앙선 철도 복선화 사업으로 새롭게 신축된 제천역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충북선, 태백선, 중앙선의 분기점이자 KTX의 이음선으로 연결된 철도교통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제천에서 태백선으로 갈아타고 보니 기차 안에는 등산복차림의 손님들이 대다수로 명상 중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굽이굽이 산등성이마다 울긋불긋 곱고 고운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경치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 순간 흥분된 감정을 누르지 못해 입속에서만 감탄사를 외쳐보았다. 이런 마음으로 낯선 곳을 만나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게 된다.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사북역에 닿았다. 사북은 우리나라 최대의 금광인 구봉광산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던 보물 같은 지역이다. 오래전에 본 사북 마을은 우중충하고 보잘 것 없이 허술했던 탄광촌이었는데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달라졌다. 깨끗하고 예쁘게 단장된 골목과 집 등이 눈이 부시게 환해졌다. 교통도 편리해지고 마을도 새로운 모습으로 꾸며져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됐다. 심심산골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아름다움에 젖어들게 했다. 어디 이뿐이랴. 기차여행을 통해 새로이 얻은 활기에 찬 행복한 마음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