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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이른 아침이다. 비가오지만 운동을 하려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근처에 있는 사직동산을 매일 걷는 것이 내 일과의 시작이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내려 아파트 둘레 길을 걸을 작정이다. 아파트 둘레 길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어 너무 좋다. 나뭇가지마다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 와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그곳에서 들리는 다양한 새소리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 마치 음악회라도 여는 듯하다. 그 소리를 들으면 청량감이 들어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숲길에는 새 소리만 들릴 뿐이지 새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소리 나는 곳을 살펴보아도 찾아낼 수가 없다. 그 때다. 화단 보호석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비에 푹 젖은 채 바들바들 떨고 앉아 있다. 웬일일까? 궁금하여 그 곁으로 다가가도 두리번거릴 뿐 꼼짝도 안하고 날아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왠지 집에서 쫓겨나와 갈 곳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의 깃털이 비에 다 젖은 채 쓸쓸히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좀 전에 무심코 들었던 새소리는 아마도 저 새를 찾는 새들의 애절한 부름이 아니었을까. 이때 문득 '혹시 저 비둘기는 어미 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미 새라면 새끼 새들이 어미 새를 찾느라 얼마나 애타는 마음일까·' 하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짠해졌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현직에 있을 때 일이 떠올랐다. 가끔 감기 몸살로 끙끙대면서도 출근준비에 바빴다. 그런 나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엄마 학교 가지 말고 약 먹고 쉬어"라고 울면서 애걸하던 어린 딸이다. 작은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시간에 늦을 새라 발걸음을 재촉하며 출근해야만 했다. 만원 버스에 타서야 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리는 듯하여 남몰래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던가. 난들 어찌 쉬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마는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 눈망울을 생각하면 내 한 몸 아프다고 결근 할 수가 없었다. 오직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교육시키고자 책임감과 자긍심을 갖고 정열을 불태웠다. 시종일관 아이들을 바르게 지도하려고 무한히 애썼다. 때로는 그 열정이 도가 넘어 아이들에게 너무 심하게 야단을 치거나 다그치던 일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후회가 많이 된다. 그들에게 내 젊음을 바치고 정년퇴직을 했으니 생각해보면 미련했지만 교사로서 할 일을 열심히 수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책임감을 갖고 몸 사리지 않은 탓이었던가. 얼마 전 첫 부임지에서 담임했던 제자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감개무량했는지 모른다. 요즘 저를 낳아주고 길러 준 부모도 외면하는 세태가 아닌가. 그럼에도 옛 스승의 고마움을 잊지 않은 그 제자에게 외려 내가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든다.

퇴직 후 처음에는 집에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규정된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누가 뭐랄 사람도 눈치 볼 일도 없으니 매사에 내 마음대로다. 늦잠도 푹 잘 수 있고 이런 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한없이 편하기만 했다. 수십 년을 학교 생활하느라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하고 매일 같이 긴장 속에 살아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나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흐를수록 진력이 났다. 점점 무료해지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점점 위축되어 매사에 의욕이 없고 밥맛도 없어졌다. 자꾸만 자신이 작아지고 왠지 도태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답답하여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좀 전에 본 비에 젖은 새처럼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추락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헤르면 헤세의 데미안에서 '어쩌면 모든 것이 시작이고 모든 것이 끝일지 모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지만 그냥 맥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평생학습관에서 동화구연을 배우고 배운 것을 이용하여 재능기부를 하고 다니니 살맛이 났다. 이것이야말로 봉사도 하고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생활이자 즐거움이 되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하여 활동을 못하고 있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하며 애타는 마음으로 견디고 있다. 비에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던 새도 지금쯤 하늘 높이 훨훨 날아올라 푸른 하늘을 무한 질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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