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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붉은 팥 봉지가 눈에 띄었다. 팥을 보니 어릴 때 어머니께서 동지가 되면 팥을 삶아 팥 시루떡을 하고 팥죽을 끓이던 생각이 생각났다. 팥죽하면 동지팥죽이 아닌가.

동짓날이 되면 농사지은 팥으로 어머니는 팥을 삶고 찹쌀가루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고 큰 가마솥에 넉넉하게 팥죽을 쒔다. 그 팥죽을 집안의 여러 곳에 한 그릇씩 담아다 놓으며 집안의 평안을 빌었다. 그리고 삽짝 밖을 향하여 귀신 물러가라고 하며 팥죽을 뿌린 후에 식구들이 모여 앉아 팥죽을 먹었다.

《영조실록》에 기록된 것을 보면 팥죽을 뿌리지 말라는 임금의 명령도 제대로 듣지 않았을 정도로 동짓날 팥죽을 뿌렸다고 한다. 귀신을 쫓겠다고 집집마다 문기둥에 얼마나 팥죽을 뿌려댔으면 임금이 다 격노激怒 했을까 싶다. 팥의 붉은 색은 벽사의 의미가 담겨있기에 임금님의 명령도 아랑곳하지 않고 팥죽을 뿌렸던 모양이다.

동지는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자 밤은 가장 긴 24절기의 22번째 절기다. 농경사회였던 시대에는 세시명절로 음력 11월이 한 해의 시작이었으며, 동짓날이 새해 첫날이었다고 한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새해 첫날인 동지에 먹는 팥죽이라 하여 '동지팥죽'이라 부른다.

옛 선조들은 동지는 해가 가장 짧아 24절기 중 밤이 가장 긴 날로 음(陰)의 기운이 극에 달한다고 했다. 그래서 동짓날 팥죽을 끓여먹으며 새해의 무사안일을 빌었다. 붉은 색을 띈 팥을 태양·불·피 같은 생명의 표식으로 여겼고, 음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팥죽을 쑤어먹었다고 한다.

동지는 드는 시기에 따라 명칭이 각각 다르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나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는 것이 아니라 팥 시루떡을 해 먹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 이유는 잘못하면 집안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처 탈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잡귀를 쫓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년 동지는 양력 12월 21일 음력으로 동짓달 초이레로 초순에 들기 때문에 팥 시루떡을 먹는 애동지가 된다.

어찌 보면 문명이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 무지했던 시절, 몽매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신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동지 팥죽에 담긴 깊은 뜻은 한 해 동안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며 지성으로 소원을 빌었던 조상들이다. 그러한 풍습을 보고 어느 학자는 동지 팥죽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말을 했다.

또한 팥이 지닌 좋은 효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고 쑤시고 아픈데 특효가 있으며,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설사, 해열, 유종, 각기,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팥은 식이섬유와 칼륨 성분이 풍부하고 비타민 B1이 가장 많은 곡류다. 겨울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기운을 가진 식품으로 추운 겨울에 먹으면 기를 보하는 음식이 된다고 한다. 참으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에도 동짓날이면 배고픈 사람을 모아 팥죽을 먹였다고 한다. 추운 겨울, 뜨거운 팥죽 한 그릇이면 영양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얼었던 속까지 녹여 추위까지 물리칠 수 있으니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이다.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팥죽 한 그릇은 보약과 다름없는 영양식이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경사나 액운이 닥쳤을 때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사를 가거나 고사를 지낼 때 팥 시루떡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또 아기가 백일이 되면 100명이 먹을 수 있게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해서 나누어 먹었다. 팥죽이나 팥떡은 이렇게 가정의 안녕과 이웃과의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어주었던 음식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에는 동지라 해도 각 가정에서 팥 시루떡을 하거나 팥죽을 끓이지 않고 그냥 지내거나 아니면 팥죽 한 그릇 사다 먹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차츰 사라져가는 전통문화가 되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마침 동지에 팥죽을 쑨다는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그 말씀을 듣고 진하게 쑨 팥죽 생각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절에 가서 동지팥죽과 팥 시루떡을 먹고 좋은 기운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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