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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입동이 지나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에 발걸음이 바빠진다. 어머니는 마당 한편에 배추, 무, 총각무, 갓, 파를 심어 놓고 완전 무공해로 정성껏 가꾸셨다. 매년 잘 되던 채소가 금년에는 거름부족인지 소독을 안해서인지 모르지만 알차지 않고 찌질 하게 자랐다. 애써 가꾼 어머니표 채소 중에서 실한 것만 골라 김장을 했다. 세 통이나 되는 김치 통을 보며 올 겨울 양식은 됐다며 어머니와 만족하게 웃었다.

김장한 그릇을 씻어 양지바른 곳에 가지런히 놓다 보니 그 옆에 놓인 커다란 옹기 시루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반들반들 유약 바른 옹기 시루가 아니고 흙으로만 만들어 구워 낸 투박하고 정감어린 전통옹기 시루다. 몇 십 년을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며 아끼고 매만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장독 옆에서 늠름하게 품위를 지키며 왕성한 활동으로 풍성한 인심을 맘껏 발휘해 주는 보물이었다. 그랬던 시루가 이제는 아무 쓸모없이 엎어져 있는 모양이 천덕꾸러기가 된 듯하여 안쓰럽게 생각된다. 어머니는 '쓸데없는 그릇들은 모두 치우라'고 하시지만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라 선뜻 버릴 수가 없다. 어머니 생전은 그 모습 그대로 두고 보고 싶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시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나진 초도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한다. 흙으로 빚은 시루는 수천 년 겨레와 함께 해 온 정든 그릇으로 떡을 찔 때 쓰는 찜기로 사용 되었다. 요즈음은 가볍고 편리하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상자 시루나 스테인리스로 된 찜틀을 애용하고 있다. 그래서 옹기 시루는 저 멀리 밀려나 아무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없게 된 사라져가는 명물이 되었다. 이제는 전시품으로나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추억의 그릇으로 남았다.

시루 앞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 올려 어머니와 정담을 나누었다. 오늘날과 같이 먹을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어머니는 백설기며 쌀가루에 콩, 팥, 호박, 무를 섞은 버무리떡을 자주 해 주었다. 지금도 밥과 떡이 있으면 떡부터 손이 가는 떡보다. 집식구들이 먹을 정도의 양은 절구통에 쌀을 찧어 떡을 했다. 떡을 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었을 텐데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은 모성애다.

시월상달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가을 떡을 해서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곳간은 늘 넉넉했다. 많은 양의 햅쌀과 팥을 씻고 일어서 불린 후 붉은팥은 가마솥에 삶고 불린 쌀을 디딜방아에 가서 찧고 채로 쳐서 가루를 곱게 내렸다. 오늘날과 같이 기계화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방앗간도 없고 디딜방아도 한 동네에 하나 정도 있을 뿐이었다. 쌀을 빻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사람이 수작업을 해야만 하는 일이니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그 노고가 대단하다.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동기간에 또 이웃 간에 서로 주고받는 정으로 살았다고 한다. 삭막해진 오늘날보다는 오순도순 이야기꽃과 웃음꽃을 피우며 일 바라지를 했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어머니다. 손잡이가 네 개 달린 큰 시루에 쌀가루와 붉은팥을 켜켜이 놓아가며 정성을 다해 가득 채웠다. 그 시루를 솥 위에 얹어놓고 김이 새지 않도록 시루 번을 바랐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쯤 떡 익는 냄새에 코가 벌름거리던 기억이 난다. 뜸을 들인 후 어머니는 긴 나무 꼬챙이로 떡을 꾹 찍어 잘 익었는가 감정을 해 보기도 했다. 다 익었다 싶으면 시루를 대청으로 옮겨 놓고 팥고물이 묻은 떡을 여러 그릇에 수북이 담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신이 있다고 믿었을 부뚜막, 안방, 성주단지 앞, 장독 위, 광, 우물가, 뒷간, 외양간, 삽짝 등 집 안 곳곳에 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었다. 그리고는 떡이 식기 전에 어두운 밤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동네방네 신나게 떡그릇을 돌렸던 일이 아련하다. 여럿이 나눠 먹고 베풀어야 복이 온다는 말처럼 베품을 실천했던 훈훈한 마음 씀씀이가 아니겠는가. 이 시대에 이러한 풍경은 사라져가는 문화가 되어 아쉬움만 남는다.

떡시루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듯 우리 이웃 간에도 따뜻한 정이 송이송이 피어나면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겠다. 따뜻한 정을 품은 떡시루를 보면서 고향의 정, 어머니의 정, 이웃들의 정이 물씬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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