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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비가 온다는 소식 때문일까. 아침부터 하늘색이 무겁다. 앞집의 텃밭도 어느새 가을이다. 이백 평 남짓한 텃밭은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에 따라 작물이 바뀌며 풍성했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여럿이다. 노느매기한 자신들의 작은 땅에 각자 작물을 심었다. 봄에는 고추, 옥수수, 고구마, 참깨, 토마토, 오이, 호박, 가지, 상추를 심어놓고 새벽부터 밭을 다녀가는 소리가 부산했다. 그렇게 텃밭이 무성해지고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8월에서 9월이 되자 이번에는 가을 작물들이 심겨졌다. 고춧대를 서둘러 뽑아낸 자리에는 김장배추와 무, 쪽파가 자리하고 담장 역할을 톡톡히 해 주던 옥수숫대가 사라진 자리는 동부로 교체 되었다.

요양원에서 몇 년을 지내시던 앞집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동네 사람들 중에는 텃밭을 욕심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텃밭치고는 꽤 넓기도 하고 자신들의 집과도 지척이다. 무엇보다 수도가 있으니 작물에 줄 물을 공급해 주기도 용이하다. 푸성귀를 키우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어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앞집은 사위가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위는 이곳과 거리가 먼 도시에 살기에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 대신 관리를 한다고 했다. 언제나 흰콩만 자라던 할머니의 텃밭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작물의 종류와 가짓수도 달랐다.

작년까지 이태 동안은 서울이 집이라는 남자가 우리 골목에 세를 얻고는 농사를 지었다. 주말이면 부인까지 내려왔다. 고추와 들깨, 대파가 주 작물이었다. 대파는 고추와 들깨 경계쯤에 꽤 많이 심었다. 그런데 작물들을 가만히 보니 키만 컸지 실하지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농약을 그리 많이 쳤음에도 고추는 탄저병으로 말라갔고 들깨는 장대같이 크기만 했다. 그나마 대파는 농약의 영향인지 벌레도 하나 없이 실했다. 김장 무렵 부부는 대파를 어느 곳에 판매를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부부는 더 이상 텃밭을 차지하지 못했다. 아마도 동네에서 인심을 잃었던 때문으로 짐작이 갈 뿐이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 골목의 할머니 몇 분이 텃밭을 차지하셨다. 할머니들은 얼마나 노련한지 농약을 치지 않았음에도 작물들이 무럭무럭 잘 자랐다.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소리로 자란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첫새벽이 되기도 전에 앞집의 텃밭은 할머니들의 웅성거림으로 깨어난다. 아침잠이 많은 나도 언제부턴가 일찍 눈이 떠졌다. 열린 창틈으로 들려오는 할머니들의 들뜬 수다가 내 귀를 저절로 쫑긋거리게 만든다.

요즘은 텃밭이 군데군데 휑해지고 있다. 고구마를 캐낸 자리는 줄기가 뭉텅뭉텅 널브러져 다른 작물이 들어서지 않았고, 베어낸 들깨는 아직 덜 익어서인지 단으로 묶어 밭에 두었다. 이제는 가을걷이도 끝나가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하지만 요즘 텃밭이 심상찮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목격한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깻단 주변에 다글다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참새와 비둘기 두 마리가 먹이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새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참새 떼가 후드득 날아올랐다. 어림잡아 삼사십 마리는 족히 되고도 남지 싶다. 역시 참새는 몸도 마음도 가볍다. 겁이 많은 참새와 달리 덩치가 큰 비둘기는 내가 보든 말든 부리로 땅을 쪼느라 바쁘다. 내가 손뼉을 치자 비둘기 녀석, 못마땅한 듯 전깃줄로 날아올라 앉는다.

오후가 되자 깨밭 주인 할머니가 밭으로 나오셨다. 깻단을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몇 군데로 나누어 쌓아 놓으셨다.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는 꿈에도 모르시는 눈치였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녀석들을 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앓이를 하는 내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하기야 깨가 땅으로 쏟아진 게 죄지, 참새들과 비둘기가 무슨 죄란 말인가. 하늘은 높고 말도 살찐다는 가을인데 새들에게도 깨가 쏟아질 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오늘 아침에 벌어진 참새와 비둘기의 절도는 완전범죄가 되고 말았다. 다만 내가 입만 꾹 다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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