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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충청도 아낙이 서울에서 택시를 탔다. 처음 시작은 택시 기사였다. 옷차림새가 영락없는 시골 여인이었다. 보퉁이를 가슴팍에 꼭 껴안은 중년의 아낙과,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그녀의 딸을 보니 궁금증이 일었던 모양이다.

"서울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야, 큰딸 네에 다니러 왔어유. 아, 이번에 야가 서울에 취직을 했지 뭐에유. 마츰 지 언니가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야를 맡기러 가는 거유. 그런데 걱정이에유. 잘 지낼지 어떨지. 야 성격이 을매나 별난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젊은 아가씨는 금세 얼굴이 붉어져서는 곁눈으로 흘겨도 보고, 엄마의 옆구리를 찔러도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뒷좌석에서 말을 하면 안 들릴까봐 조바심이 났는지 앞좌석 사이에 머리를 내밀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택시기사가 물어보지도 않은 일을 친구에게 하듯 쏟아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가 얼마 전 노름을 하다 돈을 잃어서 속상하다는 둥, 우리 형부가 키는 장대같이 커서 살갑지도 않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그런데 아버지가 서두르는 바람에 결혼을 시켰는데 속상하다는 둥, 정말이지 집안의 대소사를 줄줄줄 들려주었다. 가만 보니 택시기사는 엄마의 이야기를 즐기는 듯 했다. 얼마나 장단을 잘 맞춰 주던지, 엄마는 택시기사의 호응에 신이 나 입속에 화수분이 들어 있는 듯 하염없이 쏟아냈다. 딸은 빨리 언니네 집에 도착하기만을 속으로 기도할 뿐이었다. 택시 기사와 엄마의 수다는 언니네 집 앞에 와서야 끝이 났다.

"조심히 잘 다녀 가세요. 말씀을 얼마나 재미있게 잘 하시던지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아가씨도 직장 잘 다니구요."

"야, 고마워유, 기사양반, 그런데 잘 내려갈려나 모르것어유. 야가 속을 썩이지 말아야 헐틴데…."

택시가 골목을 다 빠져 나가도록 엄마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얼굴에는 친한 친구를 보내는 듯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말이다. 그날 나는 엄마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언니네 집 앞에서 엄마에게 악을 바락바락 쓰며 다시는 같이 다니지 않겠노라고 엄마에게 통보를 해 버렸다.

세월이 흘러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웃음이 나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서울로 취직을 해서 올라간 내가 참으로 대견했으리라.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을 텐데 그 때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나도 가끔 내 자식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자식 자랑을 하곤 하는데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어김없이 지청구를 듣게 된다. 부모에게 자식은 희망이고 자랑이다. 하지만 자식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땅을 치며 후회를 하는가 보다.

풍수지탄, 자식은 효도를 하고 싶지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요즘은 이 말이 왜 이리도 가슴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오늘같이 봄볕이 따사로운 날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엄마가 더욱더 그립기만 하다. 읍내 사는 딸네 집 담 밑으로 호박을 심어주려 걸어서 40분 거리를 인분 거름을 지고 오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이상하게 봄만 되면 그 모습이 내 가슴 속을 파고든다. 그래서일까. 두 분이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 집 담은 해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어머니와 아버지를 닮은 호박 넝쿨이 탐스럽다. 그것은 어쩌면 그리운 부모님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르겠다. 올 봄에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어김없이 오일장을 기웃거리게 되리라. 봄 시장에는 엄마와 아버지를 닮은 구수한 사투리도, 호박모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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