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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먼 기억을 소환하는 일은 내게는 가끔 명치 끝을 저릿하게 만드는 일이기도하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젊은 시절 허랑한 삶을 사셨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우리 자식들은 너무도 잘 안다. 그렇게 세상을 떠돌던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와 안착을 하신 건 언니를 낳고 부터였다. 그때는 이미 어머니는 가슴속에 여러 명의 자식을 가슴에 묻은 뒤였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더 이상 기대고 싶지도, 살갑게 대하고 싶지도 않은 사내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온 뒤에도 어머니의 생활은 그리 녹록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노름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사람들을 단칸방이었던 우리 집으로 끌어 들이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렴풋이 기억나는 일이 있다. 아버지가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라 하면 왜 그리 좋았는지 덥석 돈을 받아 들고는 신이 나서 뛰어 나가곤 했다. 주전자가 땅에 끌릴까 말까하며 받아 온 막걸리는 힘에 겨워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바람에 반실이었다. 그렇게 좁은 방에서 노름이 벌어지는 날에는 방에도 잘 들어가지 못했지만 나는 너무도 좋았다. 매일 같이 보리쌀에, 나물죽을 먹었던 날이 허다했지만 그날은 라면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속이 어떨지 나는 그때 까마득히 몰랐다.

그렇게 노름으로 어머니의 애간장을 끓이시던 아버지도 어느 해 부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집이 딸린 사과 과수원을 도지로 부치면서였다. 비록 완전한 우리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과 과수원을 하는 동안은 편하게 지낼 집이 생겼으니 우리는 뛸 듯이 기뻤다. 방도 세 칸이나 되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열심히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셨다.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우리집 살림은 조금 펴졌음에도 아버지는 큰아들 밖에 모르셨던 분이었다. 그로 인해 언니는 초등학교를 나와 공장에 들어갔고, 작은 오빠도 중학교를 끝으로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 나 또한 중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더 이상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게 막으셨다. 하지만 언니 오빠와는 다르게 고집불통이었던 나는 여상을 들어가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침, 학교를 가려고 마루를 내려서는데 아버지가 책가방을 빼앗아 불씨가 남아있는 아궁이에 욱여넣는 것이었다. 놀란 어머니는 아궁이에서 빼내 닦아주셨지만 이미 책가방은 쭈굴쭈굴 해진 뒤였다. 그 가방을 들고 첫차를 타기 위해 가는 길이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그때 언뜻 올려다 본 하늘이었다. 새벽별이 눈물인 듯 깜빡였다. 그 순간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새벽마다 등록금이며 육성회비를 빌리러 이집 저집 돌아다니곤 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결국 나는 큰오빠 덕분에 산업체 학교로 전학을 해 내 힘으로 학교를 마쳤다.

그때는 정말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치매라는 못된 병으로 또다시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다. 아버지의 병수발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대소변도 못 가리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드실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그때만큼 좋아 보이던 때가 없었다. 두 분은 어디를 가나 손을 꼭 잡고 다니셨는데 동네에서는 늙은 신혼부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짐작건대 아마도 집밖으로 나돌던 아버지가 당신을 의지하는 것이 좋으셨던 건 아니셨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청주로 병원을 다니셨다. 그 일은 내가 맡아서 했다. 병원 가는 날을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아버지는 그때마다 아침 일찍 대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셨다. 이제나저제나 딸의 차만을 기다리며 대문 앞 의자에 앉아 계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두 분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운 건 왜일까. 깊은 밤, 개구리와 풀벌레소리만이 이 밤을 밝히고 있다. 비라도 오려는 걸까. 바람이 부는 하늘엔 별들도 꼭꼭 숨었다. 아, 어느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미아가 되고 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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