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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하늘은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잿빛 하늘이다. 수도원의 건물들도 흐린 건 마찬가지, 음울한 분위기가 감돈다. 수도원의 그림자가 담긴 호수는 바람 때문일까. 수도원의 모습이 온전하지 않게 흔들리고 있다. 황금색 첨탑만이 제 색을 띠고 있다. 분명 수도원의 담장은 하얀 색이었는데 그림속의 담장은 약간 붉은 빛이 돈다. 저녁이었을까.

나는 지금 그림 한 점을 보고 있다. 그림 하단에는 러시아어로 그린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고, 2006년 이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벌써 16년 전이다. 나는 글 쓰는 모임에서 러시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림 속의 장소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이다.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수도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건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이끌리듯 어느 노파가 그리고 있던 수도원의 모습에 넋을 잃고 보게 되었다. 다른 장소로 옮기기 위해 일행들은 버스로 돌아가는데도 나는 그 그림이 다 완성되기를 바라며 기다렸다. 노파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둘러 사인을 하고는 내게 내밀었다. 그때 얼마를 주고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시간을 맞춰 주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노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건물이 아름다운 건 아마도 수도원 앞에 펼쳐진 호수가 한 몫을 하는 듯 했다. 호숫가 주변을 지키는 오래된 나무들도 건물을 더욱더 운치 있게 만들고 있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가이드는 이 호수에서 노니는 백조를 보고 차이코프스키는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실 사람의 기억만큼 믿을 건 없다고 한다.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도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라고 했다. 내가 지금 16년 전 여행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어떻게든 이야기 하겠지만 그게 모두 사실인지는 사실 나도 장담은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림 한 점을 앞에 놓고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날 호수 주변에 몇 명의 화가들이 더 있었다. 대개가 나이가 든 화가들이었다. 그 중에서 내가 택한 노파는 인상이 그리 온화하지는 않았다. 마른 체격에 주름도 유난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그 노파에게 끌렸던 것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이었다. 경직된 표정의 노파는 내가 버스에 올라타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자 그때서야 내게 엷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어떤 화가들은 자신들의 그림을 사달라고 호객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내 그림의 주인인 노파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림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때 내 짝으로 함께 했던 문우와 나는 그 노파의 그림을 기다리면서 우스갯소리로 화가의 모습이 동화 속에 나오는 마귀할멈 같다고 속삭였다. 그만큼 검은 옷을 입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파의 모습은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림은 정말 온화했다. 화폭의 풍경은 수도원과 호수, 나무가 어우러져 너무도 아름답다. 수도원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엄숙하다. 호수와 수도원을 잇는 황톳길은 나뭇잎 하나 떨어지지 않을 만큼 너무도 깨끗했다. 반면 수도원은 어룽어룽 호수 속에서 일렁였다. 전체적인 화폭의 사물들은 선명한 색은 거의 없다. 황금색 첨탑만 빼면…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잿빛 하늘, 아기자기한 수도원, 수도원을 담고 어룽거리는 호수, 화가는 그림을 통해 무엇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법이다. 그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쓰거나 그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작품이 아니다. 분명 그때 가이드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대한 소개를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곳이 어떤 곳이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16년이 흐른 지금 노파의 그림을 앞에 놓고 보니 그곳이 사뭇 궁금해졌다. 수도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여자수도원(수녀원)으로 지어졌지만 크렘린을 지키는 요새 역할도 수행했으며 표트르 대제가 이복 누나와 첫째 부인을 가두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리고 수도원에는 안톤 체호프를 비롯한 러시아의 많은 역사적 유명인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 김규면 장군 묘소도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마도 화가는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수도원에 도취되어 그곳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도 모른 채 사진을 찍고 환호성을 지르며 왁자지껄하는 모습에 경고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세월이 그리 흘렀음에도 노파의 엷은 미소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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