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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나무 계단이다. 2층으로 연결 된 길은 좁고 가파르다. 올라가는 길은 그렇게 수나롭지 않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보기와는 다르게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건물이 오래 되기도 했거니와, 이 가게도 견뎌 온 세월이 만만치가 않다. 40년 가까운 세월이다.

그 시절 음성에는 '비원'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야채 시장 거리의 지하에 있던 식당이었다. 1980년대 그 지하에는 비원 뿐 아니라 나이트클럽이 있어 젊은이들의 요새이기도 했다. 내가 남편과 선을 본 곳도 '비원' 레스토랑이었다.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기도 하고 술도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던 곳이었다. '비원'은 읍내에서 유일한 경양식 가게였기에 청춘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였다. 남편과 선을 보던 날 왜 그리 떨리던지, 다른 날 같으면 아까워서라도 돈가스 한 접시는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반도 먹지 못했다.

'샛별' 레스토랑은 '비원' 보다 한참 후에 생겨난 가게였다. 내가 결혼하기 1년 전쯤이었지만 그곳에 가 본 것은 그보다 몇 년 뒤였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삼성면이라는 곳에서 1년여를 살다 다시 음성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비원'은 몇 년 후 폐업을 하고 '샛별'이 유일한 경양식 가게로 그 명맥을 이어갔다. 우리 가족이 '샛별' 레스토랑을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남편은 외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음식 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외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객쩍은 일로 치부했기 때문이었다. 남들 보기에 알뜰살뜰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인정머리 없는 남편이고, 무정한 아빠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남편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집을 일찍 장만한 축에 드니 그리 평가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읍내에 '샛별 레스토랑'이 들어서자 아이들의 졸업식 후 풍경도 달라졌다. 그 전에는 졸업식이 끝나면 가족 단위로 중화 요리집을 찾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샛별 레스토랑 생긴 후부터는 그곳에서 밥을 먹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 미리 예약을 해야 차지할 수 있었다. 당일 날은 자리가 없어 낭패를 보는 일이 당연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음성에서 레스토랑은 대중화가 되지 않은 식당이었다. 특별한 날만 갈 수 있었다.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그때 어떤 사람은 처음 레스토랑을 가게 되었는데 돈가스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스프만 먹은 채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왔다고 한다. 멀건 죽 한 그릇이 너무 비싸 다시는 레스토랑에는 가지 않았다고도 했다.

'샛별 레스토랑'의 돈가스는 음성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가족도 아이들의 졸업식 날이나 생일날은 꼭 그곳을 찾곤 했다. 또한 결혼기념일 날은 매년 그곳에서 돈가스와 맥주나 와인을 앞에 놓고 그윽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위로해 주었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우던 달달한 팝송도 그러한 분위기를 보탰을 것이다. 지금은 읍내에도 돈가스집이 여럿 생겨나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선택의 폭이 넓어 졌다. 그래서인지 그 집은 예전처럼 사람이 붐비지는 않는다. 요즘 새로 생겨나는 돈가스 집 내부는 사방이 트였지만, 샛별 레스토랑은 중앙의 단체손님들이 앉는 좌석만 빼면 칸이 나누어 진 작은 방들로 이루어 졌다. 방마다 커튼도 달려 있어 누군가에게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제격이었다.

요즘도 우리 부부는 가끔 옛날이 그리울 때면 '샛별 레스토랑'을 찾아 간다. 남편은 양도 많고, 고기가 부드러운 그 집 돈가스를 좋아한다. 그 집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에 가면 분위기가 더 좋다. 남편은 경양식 집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얼큰한 돼지고기 찌개에 소주 한 잔이 더 어울리는 천생 시골 남자지만, 가끔은 도시 여자이기를 주장하는 나를 위해 양보를 해 준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 돈가스를 앞에 놓고 남편은 소주를 나는 맥주를 마신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산 세월도 '샛별 레스토랑'과 엇비슷하다. 오래되고 닳아 신선함은 없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편안하고 믿음을 주는 우리 부부처럼, 이 레스토랑도 음성 사람들에게는 삶이 고달플 때 찾는 안식처가 되고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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