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정말 그랬다. 그때는 왜 그리도 눈이 많이 내렸던지 한번 내리면 폭설 수준이었다.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겨울은 흰 눈에 대한 추억이 특별하다. 장지문 새로 들어오는 환한 빛에 화들짝 놀라 단칸방 문을 열면 마당은 이미 설국이다. 밤새 내린 도둑눈은 봉당에 벗어놓은 우리 가족의 신발까지 숨겨놓곤 했다. 흰둥이의 집도 눈 이불에 사라질 판이다. 제 집이 없어지건 말건 자발없는 흰둥이는 신이 나서 마당 이곳저곳을 겅중대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내가 눈을 치우는 아버지 뒤를 졸졸거리며 눈을 치우는 시늉을 하면 아버지는 추우니 방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신다. 그런데 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좁은 마당은 흰둥이가 뛰어 다니는 바람에 다져진 곳이 꽤 여러 곳이다. 아버지는 눈을 쓸던 빗자루를 들어 흰둥이를 쫓으려하지만 흰둥이는 그런 아버지의 속내를 알리 만무다. 아직 쓸지 않은 눈 위를 발랑대며 아버지와 술래잡기라도 할 냥으로 까불댄다.

사계절 중 겨울은 농부들에게는 평온이 깃드는 시간이다. 아낙들도 몇몇이 모여 따뜻한 아랫목에서 수다를 즐기고, 남정네들은 심심풀이로 화투놀이를 하며 흥뚱항뚱 춥고도 긴 겨울을 보낸다. 아버지도 종종 놀음을 하러 가곤 했는데 그 집은 우리 집과 지근거리에 있던 최씨 아저씨네 집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놀음을 할 수 있게 방을 내어 주는 집들은 가난한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아마도 놀음에서 떼어주는 개평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 집에서 국수를 섞은 라면을 얻어먹곤 했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어쩌면 그 맛 때문에 아버지의 만류에도 극구 따라 갔을 것이다. 최씨 아저씨네 집과 우리 집은 번갈아 가며 놀음을 하는 장소였다. 최씨 아저씨에게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의 딸이 있었는데 우리는 친자매처럼 지냈다. 언제부터인가 그 집으로 놀음 꾼들이 매일 같이 드나들게 되자 그 집 딸은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다.

중리 아이들에게도 겨울이면 즐기는 놀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비료포대로 썰매를 타는 일이었다. 비료포대에 지푸라기를 단단히 욱여넣으면 돌부리나 뾰족한 나뭇가지에도 엉덩이를 지켜내는 훌륭한 썰매가 된다. 비료포대 썰매장은 삼신댕이라는 곳이었다. 우리는 눈이 내린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올라갔다. 삼신댕이는 중리의 서쪽 낮은 산에 있던 무덤이었다. 그곳에서는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넓은 터에 자리 잡은 큰 무덤은 두기가 나란히 있어 썰매를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는 몰랐으나 관리는 잘 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무덤 앞에는 두 석인상이 근엄한 모습으로 서서 무덤의 주인을 단단히 지켜 주었다. 하지만 개구쟁이들이 무덤 위를 타고 내려 올 때면 석인상도 눈을 질끈 감고 묵인을 해 주는 듯 했다. 우리는 석인상이 있는 곳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다시 비료포대를 들고 무덤이 시작되는 산과 맞닿은 곳으로 올라가곤 했다. 겨울바람에 우리들의 얼굴은 발갛게 얼고, 손과 발은 시렸지만 하루해가 어찌 가는지도 몰랐다.

삼신댕이는 사실 중리 아이들에게는 겨울 뿐 아니라 여름에도 즐겨 가는 곳이었다. 무덤 주위에는 큰 나무들이 에둘러 있어 그곳에서 더위를 피해 놀곤 했다. 석인상으로 기어오르는 도마뱀을 잡았던 기억도 난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그곳을 올라 가 보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동네 개구쟁이들에게 놀이터가 되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은 시골 아이들도 모두 학교가 끝나면 학원가기 바쁘고 컴퓨터게임이라는 신세계의 놀이가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곳이 그 옛날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는 것은 우리들만의 비밀이 되고 말았다. 세월은 흐르고, 그 세월에 사람도 흘러간다. 하지만 오래된 추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추억하는 사람의 가슴속에서 알짬으로 남아 이렇게 반짝이고 있지 않던가.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