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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시원섭섭하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할까. 주인도 없이 몇 년째 방치 된 옆집이 헐렸다. 옆집은 10년 전 주인이 청주로 이사를 가고 뜨내기들이 세를 들어 살았다. 그러던 것이 5년 전부터는 세를 얻는 이가 없어 빈집인 채로 몇 년이 흘렀다. 이년 전 쯤 이었나. 군(郡)에서 옆집을 사들였다는 소리가 들렸다. 5년 전 우리 마을은 도시재생 지역으로 확정이 되어 작년부터 여기저기 개발이 한창이다. 우리 옆집도 재생사업의 장소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그동안 옆집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폐가에는 으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럴듯한 무서움과 두려움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남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을 찾아드는 이들에게 옆집은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햇살이 뜨겁던 날이었다. 우리 집과 텃밭이 붙어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밭에서 일하시다 말고 나를 보자 속삭이듯 빈집에 남자가 산다고 귀띔을 해 주셨다. 나는 그 사람을 보지 못했음에도 그날부터 왠지 인기척이 느껴진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 방 창문에서 바로 옆집이 보였기 때문에 언제나 그쪽으로 귀를 쫑긋하고는 잠이 들기도 했다. 어떤 날은 불안한 마음에서인지 새벽녘까지 잠을 설쳤다.

그것은 아마도 이태 전 보았던 뒷집의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우리 뒷집도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떠나시고 몇 년째 방치되어 폐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곳에 경제사범으로 쫓기고 있다는 남자가 숨어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남자가 꽤 여러 달 뒷집에서 기거했음에도 말이다. 그때도 이웃집 아주머니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알려 주셨다. 남편과 이장님은 그날로 그 남자를 뒷집에서 쫓아냈다. 비쩍 마른 몸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그 남자는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요 며칠 혹시나 그 남자가 다시 우리 옆집에 몰래 들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다행이 이웃집 아주머니의 귀띔을 들은 지 며칠 안 되어 옆집이 헐리게 된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옆집은 그동안 사람에게만 열린 공간은 아니었다. 옆집의 넓은 옥상은 우리집을 들고나는 길고양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고, 지나가던 개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일까. 혈기 왕성한 거미는 옆집 뒤란에 거대한 집을 짓고 포식자로서의 위엄을 떨치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옆집은 앞, 뒤 마당이 모두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초록 생명들에게는 기회의 땅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초목으로 뒤덮여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한 뒷집과는 다르게 옆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탄탄해 누군가 금방이라도 살아도 될 만큼 온전했다. 다만 대문 앞에 펼쳐진 풀로 뒤덮인 텃밭과 무너진 담장만이 주인이 부재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딱 하루 반이었다. 몇 십 년을 사람이 살았던 집이 없어지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제일 먼저 쓰러진 건 집 앞을 지키던 늙은 자두나무였다. "빠지직! 우지직!", 귀를 찢는 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뛰쳐나갔다. 늙은 자두나무의 비명이었다. 거대한 포클레인의 앞발에 사정없이 찢기고 부러져 결국에는 뽑혀 나가는 모습을 나는 우두망찰 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늙은 자두나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워 애달다 하리라. 봄이면 수줍은 듯 하얀 꽃을 밝히고, 늦여름엔 탐스런 노란 열매로 지나가던 이에게 새콤달콤 행복을 나누어 주던 그 늙은 자두나무가 지금 먼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어제부터 들리던 거대한 포클레인의 굉음과 트럭들의 엔진 소리는 오늘 점심때가 되니 들리지 않았다. 옆집은 사람이 살던 집이 맞나 싶게 넓은 공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동안 이런 저런 불편함으로 헐리길 바랐음에도 막상 뜻대로 되고 보니 오히려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옆집의 담으로 인해 가려주었던 우리집 마당과 정원, 연못, 그리고 거실까지 동네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옆집으로 인해 마당에 풀이 나도 적당히 게으름과 타협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마당에 풀이며, 연못에 여기저기 나고 자란 골풀과 부들까지 정리를 하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옆집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리도 하루를 고단하게 할 줄이야.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벌써부터 옆집이 이리도 그리울 수가 없다. 아, 그때는 왜 몰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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