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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북적이는 장터에서는 누구라도 만나면 반갑다.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는 지인도 장터에서 만나면 더 반갑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더욱 더 반가운 곳이 장터다. 그래서인지 살 것이 없어도 장에 나갈 때가 더러 있다. 갈 때는 그냥 눈요기나 할 냥으로 나섰다가도 싱싱한 나물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어느새 두둑한 비닐봉지가 양손 가득 들려 돌아오는 때가 많다. 아니, 백이면 백 그렇지 않은 날이 없다.

예전의 시골 아낙들은 오일장이면 수확한 곡식을 내다 팔아 살림살이를 장만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시골 아낙들에게는 장터는 소통의 장소이자 지친 삶을 충전하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를 따라 장에 오는 것을 오매불망 기다리곤 했다. 곤궁한 살림에 장에 가도 사실 변변히 살 것도 없어 어린 딸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그리 탐탁치 여기지 않은 어머니셨다. 하지만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는 떼를 써서라도 따라 나서곤 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꼭 부여잡고 따라다녔다. 그러다 어느 해에는 길 한복에 있던 천막의 빵집에 한 눈을 팔다 어머니를 놓친 적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장을 가실 때면 단단히 다짐을 받고는 나를 데리고 가시곤 했다. 어머니를 닮아서일까, 아니면 어머니가 그리워서일까. 바쁘지 않은 날이면 장에 가는 것이 낙이 되었다.

음성 장은 계절이 함께 따라와 좌판을 벌인다. 어쩌면 음성의 사계절은 장터의 좌판으로 인해 바뀌는 듯하다. 봄이면 오종종한 모종들이 줄을 지어 손님들을 기다린다. 이른 봄에는 상추와 함께 늦추위에 강한 모종들이 선을 보이고,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해 지면 그때부터는 온갖 모종들이 손님들을 불러 모은다.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 수박, 참외, 옥수수 모종들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여기저기 사방으로 흩어진다. 어떤 모종은 작은 텃밭에서, 또는 드넓은 밭에 심겨져 실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여름이면 밭이나 들에서 뜯거나 따 온 푸성귀나 채소들로 좌판이 풍성하다. 어느 할머니는 옥수수, 풋고추, 토마토를 조금씩 소분을 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또 다른 할머니의 좌판에서는 텃밭에서 딴 오이나 호박, 상추가 주인공이 된다.

음성장의 진정한 모습은 어쩌면 가을이다. 음성 농가에서는 고추나 인삼 농사를 짓는 집들이 많다. 특히 고추는 대부분의 농가에서 짓는 작물 중에 하나다. 음성군에서는 마른고추를 재배하는 농가를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직거래를 할 수 있는 고추 직매장도 따로 마련해 주었다. 인삼 농사를 짓는 농가를 위해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를 열어 그곳에서 직접 소비자들이 구입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렇다보니 가을 장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들썩인다. 그 외에도 산에서 채취한 버섯도 가을이면 선보이는 단골 먹거리다. 시나브로 어느덧, 겨울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좌판을 벌이는 장돌림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신발, 김, 국밥, 밑반찬, 곡물, 의류, 채소, 과일, 해산물, 두부, 떡, 붕어빵, 튀밥, 농기구, 건어물, 닭 장수들이다.

장돌림들 중 더러는 오랜 세월 낯을 익힌 덕에 단골이 되기도 했다. 그 중 신발 집은 어머니가 단골로 들르던 곳이라 나도 웬만하면 그곳을 이용하기도 한다. 연못을 청소할 때 신는 보라색 긴 장화도 그 집에서 구입했다. 반면 가끔은 마음이 아픈 때도 있다. 김 장수 아저씨는 내가 단골로 찾던 집이었다. 김도 윤기가 돌아 달큰한 게 맛있었고, 청태도 푸른색이 감돌아 싱싱했다. 믿고 사는 집이라는 게 그 김 장수 아저씨 물건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그 아저씨는 언제나 빨간 코로 유명했는데 싱글벙글 인상도 넉살도 좋은 분이셨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보이지 않더니, 그 자리를 야생화를 파는 부부가 차지를 했다. 들리는 소문에 술로 인해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고 했다. 또 한 분은 사계절을 언제나 당신이 만드신 장아찌와 산나물, 묵나물을 파시던 할머니다. 그분 또한 얼마 전부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혹시나 잘못 되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장돌림들은 대개가 음성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음성 장날이면 모두가 음성 사람이 되어 반가운 이웃이 되곤 한다. 만나면 반갑고,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지고, 좋지 않은 소식에는 마음 아픈 사이, 그들은 장날이 만들어 준 귀한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장을 가는 것인가 보다. 벌써 내일이 음성 장날이다. 내일은 어느 귀인을 만나려나.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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