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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시장 한복판에서 엄마를 놓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엄마의 치맛자락을 꼭 움켜잡고 있었는데 엄마는 온 데 간 데 없다. 나는 목이 터져라 울었다. 길 잃은 강아지가 어미에게 신호를 보내듯이 말이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동네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는 여기저기 수소문 해 엄마를 찾아다 주셨다. 어마지두 놀란 나는 엄마를 보자마다 품에 안겨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장에 가실 때면 종종 나를 데리고 가셨다. 막내이기도 했지만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탓에 응석받이로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 하곤 했다. 엄마의 주머니는 늘 가벼웠지만 그래도 주머니를 푸시는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사주실 때였다. 그때 빵집은 나무의자 몇 개 놓인 허름한 천막집이었다. 시장에서 유일한 빵을 파는 곳이라 그런지 나무의자는 언제나 비어 있는 때가 없었다. 복작대는 시장 중간에 있던 그 집은 품어져 나오는 하얀 김 냄새로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배를 요동치게 했다. 엄마의 손을 놓쳤던 그날도 나는 빵집 앞에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언제든 원하는 물건이 있지만 그 시절은 모든 생활 용품이나 식료품들을 5일장에서 해결을 해야만 했다. 그러니 작은 읍내의 5일 장날은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내가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천막이었던 빵집은 '음성빵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어엿한 상점이 되어 있었다. 몇 년 전 쯤, 음성 빵집이 모 프로그램에 맛 집으로 방영되면서 한때는 줄을 서야 빵을 먹을 수 있었다.

음성 빵집 지척에 있는 '영화만두'집은 우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 집이다. 명절이나 김장을 하는 날이면 미리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넉넉히 주문을 해 놓는다. 물론 설날에 집 만두를 빚기는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영화만두집 만두를 먹고 싶어 한다. 집 만두는 소금을 넣어 삭힌 고추를 넣으니 매워 그냥 먹기에는 속도 쓰리고 부드럽지도 않다. 그럼에도 만둣국에는 얼큰하고 개운한 집 만두가 제격인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들이 영화만두집 만두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워 감칠맛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만두집은 사실 친정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집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명치끝이 아리다. 그날은 어느 겨울의 끝이었다. 그날따라 엄마가 보고 싶었다. 큰딸아이와 함께 영화만두집 김치만두와 찐빵을 사서는 친정집을 찾아 갔었다. 마루에 어지럽게 널린 엄마의 옷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황망한 마음에 방문을 여니 이불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계시던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떨리는 소리로 동네 어귀에서 하얀 택시를 피하다 도랑으로 떨어지셨는데 겨우겨우 집까지 오셨다고 했다. 그날 도랑벽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는 바람에 엄마는 뇌를 다치고 마셨다. 그 후 치매로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끝내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하셨다. 영화만두집 사장님 내외분도 나를 보면 그 집 만두를 좋아하시던 엄마가 생각나시는지 아주 가끔 기억속의 엄마를 불러내시곤 하신다.

그러고 보니 '음성빵집'과 '영화만두'집은 모두 내 어머니를 소환하고 추억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물론 '영화만두'집은 '음성빵집'보다는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음성 사람들이라면 두 집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며칠째 내린 눈으로 음성은 설국이다. 이렇게 옷깃을 여미고 어깨가 움츠러드는 날이면 누군가는 또 그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가 있지는 않을까. 나는 유독 커다란 솥뚜껑이 열리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품어져 나오는 김 속에 몽실한 찐빵을 만나는 그 순간은, 장터에서 엄마와 내가 허기를 달래던 그 먼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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