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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인연은 우연히 이뤄졌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권씩, 아닌 두 권 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일 년이면 12명의 저자가 쓴 책으로 토론을 한다. 대부분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12월에 사는 책들은 내년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 되곤 한다. 또한 6월에 주문하는 책들은 하반기 6개월 동안 열심히 읽고 1년의 마무리를 잘 하자라는 나와의 약속이며 다짐이기도 하다.

작년 6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며칠 후 택배가 도착해 뜯어보니 그중 한 권이 주문한 책이 아니었다. 오배송이 된 모양이었다. 책은 꽤나 두껍기도 했지만 제목을 보니 무겁고 어려워 보였다. 어느 누가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일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 책이 아니니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인터넷 서점에 전화를 하고 난 며칠 뒤 잘못 온 책과 내가 주문한 책을 맞교환했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잘못 배송된 그 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며칠을 심란하게 했다. 결국 일주일 후 그 책을 주문하고야 말았다. 그 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이다. 책을 받아보니 두껍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용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 무렵 방송에서 심심찮게 소개 되었던 책이라 어느 정도 내용은 파악하고 있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이미 내 책이 되어서일까. 막상 읽으려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12월 책모임이 끝나고 다음해의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고전문학을 많이 했으니 내년에는 문학과 비문학을 격월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속으로 쾌재가 절로 나왔다.

우리 독서모임은 총 8명이다. 12월과 6월에 상반기와 하반기에 읽을 책들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된다. 나는 비문학으로는 《총, 균, 쇠》를 추천 책으로 내 놓았다. 다행이도 선정이 되어 4월의 책이 되었다. 700페이지를 육박하는 두께이다 보니 여유를 두고 읽자는 의견으로 이번 달에 토론을 하게 된 책이었다. 자신이 추천하는 책이 선정되면 그 달에는 리더가 되어 진행을 해야 한다. 그러니 정말 꼼꼼히 읽어야만 했다. 그동안 적잖은 책을 읽어내면서 이번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책이 없었지 싶다.

방대한 내용의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이렇다. 오늘날 강국으로 부상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식량 생산을 바탕으로 한 중심지에 편입 되었거나 그와 같은 중심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문자, 금속 기계류, 중앙 집권적 정치체제 등을 갖춘 요소가 갖추어 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그동안 유럽인들이 부르짖었던 백인 우월주의 사상이 얼마나 오만하고 우매한 주장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뉴기니와 같은 많은 아프리카 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와, 유라시아의 많은 나라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 사회의 퀘적은 환경적 요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총, 균, 쇠》가 출판 된 지, 25년이 되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무기, 병균, 금속은 우리 인류의 지구 이편에서는 왜 멸망을 가져 왔는지, 또 저 편에서는 발전을 거듭해 강국으로 자리매김 했는지를, 그래서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토론을 하며 우리 모두는 무기, 병균, 금속은 지금도 여전히 인류의 존폐를 결정하는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음에 놀라워했다. 책을 읽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연의 고마움, 못 만났으면 어찌했을까. 애초, 이 책을 주문한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아니면 잘못 포장한 인터넷 서점 사원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아니 이렇게 고마워하는 것은 맞을까. 잘못 포장한 그 사원은 피해는 없었는지 헤아려야 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일이라곤 그저 그 모든 사람과, 과정의 우연, 인연에 감사해야 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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