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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우연한 자리에서 나를 보게 되었다. 지난 주말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갔다가 심야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들과 딸아이가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미리 예매해 놓은 모양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뮤지컬 영화였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한 주인공 세연은 자신이 폐암말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렵지만 현실은 자신의 아픔을 하소연 할 수도 위로 받을 수도 없었다. 여전히 남편과 자식들은 아침이면 세연을 바쁘게 불러댔고 고통을 참아 가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세연은 자신이 죽기 전에 하고픈 일들을 적어본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빛났던 순간을 함께했던 첫사랑을 찾기로 한다. 남편은 황당했지만 같이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찾은 첫사랑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세연에게 첫사랑의 죽음보다 더 황당한 것은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었던 그 사람은 자신의 친구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빛나게 해 주었던 사람은 정작 지금 곁에 있는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상하게도 세연이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 모습에서보다 오히려 세연이 죽고 세상을 떠난 후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딸의 도시락을 챙기고 아들의 영양제를 챙겨 주는 영화 속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내가 없는 세상을 떠 올렸다. 우리 아이들이 영화 속의 아들과 딸처럼 학교를 다닐 때를 생각 했고,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된 지금의 아이들의 모습도 생각했다. 양말도 옷도 제대로 찾아 입지 못하는 남편도 떠올랐다. 아침이면 양말을 찾아 달라고 하고, 얼마 전에는 영하권으로 떨어져 날씨가 추워졌다며 따듯한 바지를 찾아 달라 했다. 밥도 해야 하고 내 수업준비도 해야 하는 아침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남편은 언제나 나를 불러대기 바쁘다. 양말 서랍도 열기 싫어해 얼마 전부터 침대 옆에 상자를 마련해 그곳에 속옷과 양말을 넣어 뒀다. 남편의 상의와 바지가 걸려 있는 행거도 바뀐 게 없다. 그럼에도 남편은 언제나 나를 불러 해결하고자 한다. 말씨름이 싫어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은 미리 남편이 입을 바지와 상의를 골라 침대위에 걸쳐 놓는 날도 더러 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옆에 앉았던 아들이 내 모습을 보았는지 슬그머니 휴지를 내밀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순간순간 나를 불러내곤 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이 세상도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허랑한 날은 없었다. 정말 열심히 살아온 하루하루들이다. 물론 살아온 날들 중에는 모자라고 실수도 있어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순간은 있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어느덧 나도 앞으로의 삶이 그동안 살아온 날보다는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쌓이면 마음을 좀 비워야 할 텐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밤이면 잠을 설치는 때가 많다. 문득문득 드는 삶의 종착점, 시작보다 마지막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헤르만 헤세는 '아름다운 죽음의 사색'에서 나이가 쉰이 되면 기다리는 것을 배우고, 침묵하는 것을 익히며, 귀 기울여 듣는 것도 배운다고 했다. 때문에 허약해지고 나약해지는 대신에 그런 좋은 것들을 가진다는 것은 큰 이득이라고도 했다. 내 나이 쉰을 넘어 예순이 가까워 오는데도 아직도 기다리지도, 침묵하지도, 귀 기울여 듣는 것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니 나는 언제쯤 삶의 이치를 알까. 아니 삶이 끝나기 전 깨닫기나 할까 걱정이다.

영화가 끝나고 아들은 내 손을 잡고 나는 딸의 손을 잡고 우리는 그렇게 영화관을 나왔다.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을, 내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으니 그나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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