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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충북일보] 제일 만만한 곳이다. 이제는 집보다 더 편안하다.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아무 거리낌 없이 장소를 정한다. 집이라는 곳은 누군가 방문을 하게 되면 일단 바빠진다. 청소도 해야 하고, 주전부리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약간의 돈만 있으면 된다. 카페, 어디를 가든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야말로 카페 시절이다. 작은 시골 읍내에도 수십 군데의 카페가 생겼다. 하지만 모든 카페가 운영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일 년도 채 안 돼 문을 닫는 곳도 있고, 몇 년이 지났음에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도 있다. 그러고 보면 카페의 성패는 그 곳만의 차별화가 관건이다. 사람이 끊이지 않는 카페를 보면 분위기가 한 몫을 한다. 커피의 맛은 둘째다. 어차피 전문가가 아닌 이상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지는 않는 듯하다.

오늘도 C여사님과 카페를 왔다. 설 명절 끝이라 밥도 먹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는 곳인데도 이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들고난다. 주인장이 직접 설계를 하고 지어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이다. 전문적으로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여느 카페에서 느끼는 꼼꼼함과 심플한 맛은 없다. 하지만 주인장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출된 카페는 편안하고 따뜻해 정이 간다.

음식을 앞에 놓고 보니 30여 년 전이 떠오른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레스토랑이었다. 그 당시 레스토랑은 시골 읍내에서 꽤 핫한 젊은이들의 요새였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차도 마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그래서 맞선을 보는 장소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그날 얼마나 떨었는지 음식을 반도 먹지 못했다. 쉽게 먹을 수 없던 '돈까스'를 앞에 놓고, 나는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음식을 그렇게나 많이 남기다니…. 지금도 이렇게 그날이 생생한 걸 보니 그때는 꽤 내숭쟁이였던 게 틀림없다. 육식을 잘 못하지만 그나마 '돈까스'는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였는데 말이다.

지금은 많은 카페가 차와 함께 음식도 구비하고 있다. 물론 전문 레스토랑 음식의 종류만큼 풍성하지는 않지만 맛에 있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밥도 먹고 차도 마시니 행복한 시간이다. 두 시간 남짓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페의 따뜻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C여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버렸다. C여사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법문을 듣는 듯 몰입을 하게 만든다. 오늘은 당신이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연세가 지긋하신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읽고 마음을 수양하는 분이시다. 그래서인지 얼굴도 맑고 몸도 흐트러짐이 없다. 마음이 이리 맑으시니 얼굴 또한 편안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카페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C여사님의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었다. 배가 부를 만도 한데 몸이 이렇게도 가벼울 수가 없다. 맛있는 음식도 좋은 이야기와 함께 하니 소화가 잘 되는 모양이다. 나와 C여사님은 몇 십 년의 나이 차가 있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전혀 그 간극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 분의 마음이 더 젊다는 생각이 들 데가 있다. 사람의 관계는 불편하다고 생각되면 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여사님과 나는 만난 지 2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만나면 편안하고 행복하다.

밖을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 찬바람이 외투 속으로 파고든다. 군데군데 빙판이 된 길을 나와 C여사님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먼발치의 복숭아나무 위에서 겨울까치 한 마리가 꽁지깃을 다듬는 평온한 시간이다. 오늘도 우리는 카페에서 또 이렇게 아름다운 날을 만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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