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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하기야 그리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서 이곳도 수없이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어 왔다. 그러니 그 누구도 이곳이 그 무시무시한 장소라는 것은 알 리 만무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그 고개를 넘어 장에 갈 때도 마냥 설렜고, 친구들과 읍내에서 놀다 함께 집으로 가는 그 고개는 저녁노을이 우리의 앞에서 붉게 마중을 나오던 고개였다.

그럼에도 딱 한 번 그 고개가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충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통학을 할 때였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후라 막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음성 터미널에 내리니 이미 밖은 깜깜해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그 고개는 길도 그리 좋지 않았고, 가로등도 없었다. 물론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나와 달라고 부탁은 해 놓은 터였다. 그래도 우리 집과 읍내는 거리가 있어 고개는 혼자 넘어가야 했다. 고개를 넘어 다박다박 걷고 있는데, 언제 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순간 뒤를 홱 돌아보았다. 과연, 저 만치서 막대기를 흔들며 따라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내가 눈치 챘음을 알았는지 그 남자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 여차하면 따라잡을 기세였다. 두려운 마음에 혼비백산하여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는 오던 길을 돌아 빠르게 고개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날 엄마도 그 남자를 보고는 부러 큰소리로 나를 부르셨다고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밀려오곤 한다. 그 후 절대 밤에는 혼자 그 고개를 넘지 않았다. 아마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남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흔행이 고개'는 음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회에 따르면 조선시대 형장이면서 풍장을 하던 장소가 시대가 흐르면서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흉한 일이 행해지던 고개라는 뜻을 지닌 흉행이 고개(兇行峙)라고 불리던 것이 구전되어 지금의 '흔행이 고개'로 불리게 된 것이다. 조선 헌종 때는 음성현에서 죄수를 효수할 때면 이 고개에서 참수를 했고 죄를 지어 장사도 지내지 못하는 죄인들의 시체를 가매장했다고 한다. 고개에는 대충 묻힌 채 썩어가는 시체의 흉한 모습과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도 한다.

요즘은 괴담이나 흉가 체험을 방영하는 방송매체가 많다. '흔행이 고개'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유튜브 구독수를 높이기 위해 방송 제작자들이 자료를 찾다 우연찮게 알아낸 곳이었지 싶다. 이렇게 흉흉하고 무서운 사연이 있는 곳이니 자극적인 것을 좇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을 없을 터이다. 인터넷으로 '흔행이 고개'를 검색하니 과연 지명에 대한 많은 자료와 함께 유튜버들이 이 고개에 대한 이야기를 올린 것이 심심찮게 보였다. 그 중 어떤 유튜버는 직접 '흔행이 고개'를 찾아 와 방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유튜버는 '흔행이 고개'가 어딘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 엉뚱하게도 '덕생 고개'를 '흔행이 고개'라며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흔행이 고개는 읍내의 역말에서 신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큰 대로변으로 바뀌어 옛날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주변에는 중학교와 초등학교, 연립주택이 들어섰고, 고개를 넘으면 식당과 많은 사무실이 있어 그 옛날 시체들이 널브러진 흉흉함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은 뻔한 사실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위해 자구책으로 선택한 장소가 근처 '덕생 고개'였던 모양이다. 그곳은 오래전 쓰레기 매립장이 있었던 산길로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그 고개는 신천리에서 초천리와 동음리로 넘어가는 산길이다. 더구나 밤중에 촬영을 하니 정말 귀신이 나올 듯도 하고 그 옛날 흉측한 시체들이 널브러진 모습도 상상이 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유튜브를 보면서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잘못된 정보는 많은 이들의 마음과 눈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정보화 사회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무조건 적인 맹신은 금물이다. 역사적 장소를 알리고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잘못된 사실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퍼트린다. 음성의 역사적 장소인 '흔행이 고개'가 가십거리로 세상의 바다에서 떠돌지 않기를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 고개는 저 먼 추억 속에서 엄마와 함께 장터를 향했던 순진하기만 했을 어린 아기가 넘었던 아름다운 고개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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