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바람이 뒷집을 허무는 중이다. 반질거리던 마당과 철마다 꽃들이 바투 피어나던 정원, 장골이었던 기와집도 주인이 없으니 세월 앞에 속수무책이다. 분홍빛 그 고운 홍매화 빈 가지 위로 박주가리 열매가 참새마냥 배를 불쑥 내밀고 넝쿨 따라 거풋하게 앉았다. 인기척을 느낀 것일까. 고양이 몇 마리가 허물어가는 흙담위로 풀쩍 뛰어 오른다. 바람이 휙 지나간다. 정원이 끝나는 곳에 있던 뒷간 낡은 문이 조용히 몸을 떤다. 양철로 된 문이다. 뒷간도 허물어가기는 여지없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뒷간으로 살금살금 사라졌다. 아, 저 녀석도 아는 모양이다. 뒷간에서 지켜야할 행동거지를.

어머니는 형제자매 중 막내였다. 그러니 맏이였던 외삼촌의 자식들과 나는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아 조카뻘이었는데도 동무처럼 지냈다. 외갓집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골의 흐느실이라는 곳이었다. 동네에서 제일 꼭대기였던 외갓집은 동네에서도 부잣집으로 알아주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어머니는 방학이 되면 으레 외갓집에 나를 맡기셨다. 모든 게 부요한 외갓집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즐거운 일이었지만 딱 하나, 뒷간을 가는 일은 예외였다. 외갓집 뒷간은 밤에 보면 뒤꼍 밤나무 아래 오도카니 웅크린 커다란 곰 같았다. 초가지붕에 흙벽으로 만든 집이었는데 안은 꽤 넓었다. 앞쪽에 똥독이 있고 뒤쪽으로 아궁이 재를 모아 두었다. 똥독의 크기도 우리 집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둥근 통나무를 양쪽으로 세 개씩 엮어 발판을 만들어 똥독에 얹어 놓았다. 항아리 위에 얹어 놓았을 뿐이니 고정이 된 것도 아니었다. 중심을 잡지 못하면 한쪽으로 쏠리기도 하고 삐걱거렸다. 숨어드는 빛이 적어 낮인데도 뒷간 안은 언제나 어둡고 축축했다. 그나마 낮에는 판자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몇 줄기 빛이 있어 괜찮았다. 문제는 밤이었다.

그날은 온종일 눈이 내려 마당도 들판도 마법처럼 눈 속으로 숨어들어 잠을 자는 듯 고요했다.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어린 손자들을 위해 외할머니는 뒤꼍 장독대 항아리에 넣어 둔 고욤을 사발에 떠 오셨다. 처음에는 시커멓게 얼은 그 고욤이 손이 가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조금씩 떠 먹다보니 달콤한 맛에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얼마나 먹었던 것일까. 밤이 되자 뱃속이 꾸르륵꾸르륵 요동을 쳤다. 외할머니는 요강에 보라 하셨지만 안 될 말이었다. 분명 작은 게 아닌 큰 것이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쏴르르 쏟아져 나올 것이었다.

뒷간으로 가는 길은 안채와 헛간 사이를 지나야 했다. 호롱불을 들고 앞장선 외할머니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고 따라갔다. 외할머니는 호롱불을 뒷간 안에 놓은 후 내가 발판에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서야 나갔다. 나무문을 살짝 열어 놓고 뒤돌아선 외할머니는 계속 말도 걸어 주셨다.

"할미 여기 있다, 보이지?"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 바람만이 밤나무 숲을 휘돌다 뒷간 앞을 휘잉 몰아쳐 지났을 것이다. 가끔, 삐걱 삐걱, 문소리가 들렸다. 그건 아마도 외할머니가 온몸으로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시던 순간이었을까. 내 이름을 부르시곤, 할미 여깃다, 하시던 외할머니의 음성이 어제인 듯 귓전을 맴돈다.

외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뒷집 뒷간을 지키는 중이다. 우리 집 담장과 가까이 있어 뒷집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깝다. 냐옹, 고양이 소리로 알려 주었다. 괜찮다고, 무섭지 않을 거라고. 한참을 기다려도 고양이는 기척이 없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뒷간 한쪽 벽이 뻥 뚫려 있지 않은가.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외할머니가 그랬듯 새신랑이었던 남편이 그랬듯 뒷간 앞에서는 그렇게 지켜 주는 것이 미덕이지 않던가. 그러니 헛일도 아니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