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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정책과장

얼마 전 갑작스럽게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아직 40대 중반 정도로, 한참 업무도 많고 가족들의 안녕에 신경 쓸 일이 많았을 와중에 스스로 세상과 이별을 한 분이었다. 나와는 친분이 깊지는 않았지만, 성격이 유쾌하고 업무에서는 신중한 분이라 본받을 점이 많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던 터라 그 분의 죽음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망한 마음에 조문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남겨진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인사만 꾸벅 하고 황급히 뒤를 돌아나왔다. "곧 괜찮아질꺼다"라든가 "시간이 약이다"와 같은 상투적인,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냐"는 정말 위로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차마 그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한국의 자살률이 26.6명(10만 명당 자살자수, '18년, 통계청)이고 13년 연속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통계수치와 지난해 구하라, 설리 등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에 청소년들이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킬까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들으면서도 '대체 누가 그렇게 쉽게 삶을 포기할까'라는 생각으로 나와는 다른 동네의 이야기로 거리를 두었었다. 하지만 바로 내 옆의 일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설 연휴기간 중 가족들과 <마션>이라는 영화를 봤다. NASA의 화성탐사대 이야기로, 탐사 중 예상치 못한 모래폭풍으로 갑작스레 화성에서 철수하던 중 주인공만 홀로 화성에 남겨진다. 물과 산소와 식량은 물론 아무도 없다는 절망과 고독, 생존에 대한 두려움 끝에 주인공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 "나는 여기서 죽지 않아"라는 단호한 한 마디와 함께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화성 생존기를 쓴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상황보다 더 심각한 화성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프로젝트는 가히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인공은 기적같이 또 그걸 해낸다. 동료들과의 교신으로 고독도 탈피하고 말이다. 물론 영화니까 이 모든 일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만. 이미 몇 해 전 한번 봤던 영화였지만 며칠 전 조문의 기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영화 곳곳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모습과 대사들은 이전과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 대사가 말이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살아 돌아오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과 비슷한 경우로, 누구보다 건강했던 주변 친척이나 동료들이 갑작스레 큰 병에 걸려 좌절의 시기를 넘어 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줄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할 때가 있다. 특히 본인만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삶을 포기하고 싶지만,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해 좀 더 살아보려고 노력한다는 말에 아프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되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작년 초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당시 100세를 맞으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윤동주 시인과 동문수학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들었다는 100세 어르신은 장수의 비결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그 분이 생각하는 일의 목적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나 혼자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삶의 목적이 있기에 존재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로 감정이 널을 뛰고 마주하기 끔찍한 일들이 닥칠지 모르는 인생에서 내 삶의 원동력은 결국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며,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뜬금없더라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어야겠다.

새해 초부터 여기저기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지만, 모두 다 음력 설 이전의 소식들 아니겠는가. 모두 작년의 아픔으로 기억하고 99세 이후 새 출발하는 100세 어르신의 느낌은 어떠셨을지 상상하며 새롭게 2020년을 출발해보고자 한다, 이 노래와 함께.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는 것.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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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