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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바이오산업과장

일 년에 제사가 여러 번인 우리 집 냉장고는 늘 빈틈이 없다. 냉장고가 무려 세 대나 되는데도 말이다. 어릴 적 빼곡한 검은 봉다리(봉지나 비닐이 아니라 봉다리라고 불러야 맛이 난다) 속에서 마치 고고학자 발굴 수준으로 식재료를 찾는 엄마가 대단해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점점 커져가는 딸들의 잔소리와 정리기술을 부르짖는 TV 프로그램들에 덕분에 우리 엄마 냉장고에서 검정 봉다리들은 사라지고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전히 늘 포화상태지만 말이다.

그런 엄마의 냉장고에 요즘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이다. 원래도 집밥을 선호하는데다가 그나마 한두 끼 외식을 하던 주말까지도 엄마만 쳐다보는 식구들, 아니 식충이들로 엄마의 냉장고는 매일 털려나가고 있다. 비어가는 냉장고와 식단 고민 때문에 엄마의 마음 한 쪽은 늘 무겁고, 또 한편으로는 가족 모두 집에 갇혀있는 일이 많다보니 집안일에 대한 가족들의 쓸데없는 관심(이라 부르지만 잔소리)으로 다른 마음 한 쪽도 탈탈 털린다. 비어가는 곳간과 비례하여 엄마의 걱정은 쌓여간다.

게다가 나 역시 최근에는 업무로 퇴근시간이 늦는 일이 잦아지고, 괜한 피곤과 예민함에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더라도 집 안에서까지 '거리두기'를 실천하다보니 이미 지친 엄마의 마음은 딸 눈치보기까지 더해져 더 우울해졌을 것이다. 평소 즐기던 운동도, 친구들과의 수다도 다 끊어진 요즘이라 엄마 역시도 심기가 불편한데 말이다.

역시 '엄마' 역할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언니도 만만찮다. 에너지 넘치는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종일 집에 있는 일은 주말만 잠깐, 그것도 간혹 겪는 나에게도 버거운 일인데, 벌써 몇 달 째 매일을 그들과 함께 있으려니 전쟁터가 따로 없는 듯하다. 조카들은 현관문을 열기만 해도 바이러스가 본인들을 공격한다면서 집에만 있겠다며 떡볶이를 만들어내라, 밥은 언제 주냐 등 언니를 식모처럼 부려먹고 있단다. 게다가 집 안에 온갖 장난감을 펼쳐놓고 궁상을 떨어대는 통에 천상 여자였던 언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점점 천하장사같은 우렁찬 포효가 끊이지 않지만, 전화 너머로 들리는 조카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는 언니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부와의 접촉이 줄어든 것과는 달리 가족 간 접촉이 현저히 늘어난 요즘, 이러한 변화에 모두가 즐겁지만은 않다. 재택근무 중 집안일을 하지 않는 남동생을 흉기로 찌른 누나 이야기나 가정폭력, 아동학대 신고가 전년대비 증가했다는 뉴스가 들리기도 하고, 중국의 경우 코로나사태 이후 이혼율이 급증했다는 소식도 있으니 말이다.

가정의 날을 지정하면서까지 가족과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했던 것과는 달리 반강제적으로 가족 간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진 지금 심리적으로라도 멀어지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 노이로제(Corona neurose)', '코로나 블루(Corona Blue)' 등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불안정을 나타내는 신조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한편으로는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심리지원센터를 열어 전화 심리 상담이나 안정화기법을 온라인에 소개하는 등 심리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심리적 방역' 활동도 현장방역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추세이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가족 간이지만 비자발적으로 좁혀진 거리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적응, 그리고 격려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한다. 물론 나부터 잘해야겠지만.

뒤늦게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엄마는 내 눈치를 보느라 같이 살지도 않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나의 안부와 그날의 기분을 물어보기까지 했다니 마음 한 쪽이 따끔거린다. 엄마의 곳간을 털어먹으면서도 감사의 마음이나 수다 떠는 친구가 되어드리기는커녕 상전 모시듯 하게 만들었다니 참 죄송한 일이다. 이 지면을 빌어 엄마에게 죄송한 맘을 전하며, 오늘 밤에는 엄마와 함께 인터넷쇼핑으로라도 엄마의 냉장고를 꽉 채울 품목들을 골라 담아봐야겠다. 더불어 오늘 우리 집 저녁메뉴로 엄마의 최애 배달음식인 피자를 쏘기로 한다. 부디 나보다 먼저 피자가 도착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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