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바갈미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지명의 어원을 찾다보면 대부분의 지명들이 그 뿌리가 같은 데서 변이되어 파생된 것이 많아서 쉽게 어원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떤 지명은 너무 변이가 심하여 비슷한 음을 가진 다른 지역의 지명을 아무리 비교해 보아도, 또는 고어를 분석해 보아도 도저히 알아내기가 어려운 지명들도 많아서 지명의 어원을 찾는 작업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지명에 대한 나의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알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영원히 어원을 찾지 못하고 이 지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음성군 삼성면 천평리의 '바갈미'라는 지명도 그런 지명 중에 하나였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여도 짐작할 수가 없어서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었는데 이제서야 뿌리를 찾는 실마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갈미'를 하나의 단어로 보면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지만 한 글자씩 나누어서 분석해 보면 서서히 그 의미가 다가온다. 우선 '바갈미'의 구성요소인 '미'는 '산'을 뜻하는 말이고 '갈미'는 '갈라지는 산줄기'라는 의미로서 여러 지명에 쓰인 말임을 알 수가 있었다.

강원도 오대산 일대의 삼국시대 지명은 '지산현(支山縣)'이었다. 고려 시대에 '연곡현(連谷縣)'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 두 이름을 비교해 보면 중요한 단서를 찾아낼 수가 있다. 지명에서 '갈라져 나간 산' 또는 '산이 이어져 나간 줄기(支脈)'를 가리켜 '갈미, 갈매, 가라미, 가라매'라 하는데 이는 순우리말이므로 음차와 훈차를 이용한 이두식 한자표기가 바로 '지산(支山)'이 된다. 그 후에 한문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그 의미를 한문식으로 표기하면 '연곡(連谷)'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오대산의 지형을 보면 큰 산줄기가 서쪽으로 크게 갈라져서 계방산, 태기산, 금물산, 용문산, 유명산 등의 봉우리를 이루며 남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니 '지산(支山)'과 '연곡(連谷)'으로 표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갈라지는 산줄기를 가진 지형을 '갈미, 가래미'라 하고 갈라지는 골짜기나 그 주변에 생긴 마을을 '갈골, 가래골, 가래실'이라 부르는 지명은 주변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해석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선행요소인 '바'는 무슨 의미일까· 지명은 오랫동안 변이를 거쳐 온 것이므로 현재의 지명 구성요소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바갈미, 박갈미, 박알미' 등의 변이음으로 보아 '박'을 선행요소로 분석해 본다면 '박'은 '크다'의 의미로서 지명에서 많이 쓰이는 일반적인 지명 구성 요소임을 금방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음성군 삼성면 천평리는 원래 충주군 천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박성리(博城里), 천곡리(泉谷里), 표산리(瓢山里), 법평리(法坪里)의 각 일부와 대조면의 태티리 일부, 사다면의 신목리(新目里) 일부를 병합하여 천곡과 법평의 이름을 따서 천평리라 하여 삼성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즉 '새미실'을 '천곡(泉谷)', '벙것들'을 '법평(法坪)' '새누니'를 '신목(新目)'이라 표기한 것은 음차와 훈차에 의한 이두식 표기인데 '바갈미'를 '표산(瓢山)'이라 표기한 것은 '바가지'의 '바가' 또는 '박'의 음을 훈차하여 표기한 것이므로 '바갈미'는 '박(크다)+ 갈미(가라진 산줄기)'의 의미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더욱이 '박성리(博城里)'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마을이 어디였는지, 순우리말이 무엇이었는지 전해지지 않지만 '바갈미'라는 마을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신송리의 '박성말'을 비롯하여 완주군 구이면 '박성리',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의 '박성마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의 '박성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우리말 지명이 '박달말'이고 이를 음차, 훈차하여 '박석리(博石里)→ 박성리(博城里)'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성리(博城里)'가 '박달골(큰 산 마을) → 박석골 → 박성골' 또는 '박미골 →박산골→박성골'의 변이 과정을 유추해 본다면 '바갈미'는 '박갈미→바갈미'로 변이된 것으로서 '크게 갈라지는 산줄기 주변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추정이 된다.

이와 같이 한자로 표기된 지명들에서 우리 조상들이 숨겨놓은 어원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