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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8.26 16:50:3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갑자기 눈이 시리듯 부셔왔다. 태안 국립공원으로 접어드니 삼면으로 바다가 선물처럼 펼쳐진다.

"아빠, 선루프 좀 열어주세요."

훌쩍 커버린 중고생 아들 녀석들도 차 천정의 선루프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바다는 언제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이었다. 1박 2일 짧은 여름휴가지로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선택된 몽산포 해안 "카라반캠핑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세종시 건설로 인해 새 도로가 정비되어 소요시간은 더 짧아졌다.

국내 자동차 보급 대수가 1800만대를 넘어서면서 자동차와 캠핑을 접목한 '카라반 캠핑장'의 인기가 높다. 카라반 캠핑장은 고정식 캠핑카인 카라반을 설치한 뒤 캠핑 족(族)을 대상으로 임대를 주고 수익을 올리는 캠핑장을 말한다. 주차장 형태의 이동식 자가용 캠핑카 전용 캠핑장인 '오토캠핑장'과는 차이가 있다. 청주서 태안 몽산포까지 자동차로 보통 2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다, 그림이다

"아, 멸치 냄새가 나."

관리인으로부터 캠핑카라반의 열쇠를 받고 출입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터트린 첫 일성(一聲)이다. 그러고 보니 멸치냄새가 실내에 가득 뱄다. 빨간색 스위치 2개의 잠금장치와 방충망이 달린 출입문은 마치 견고한 비행기 문처럼 색다르다. 카라반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든 풍경은 바다가 보이는 침실이었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 마련된 침실은 꿈처럼 포근하다. 샤워실, 거실, 싱크대도 고만고만하지만 생각보다 공간은 넉넉했다. 캠핑카라반 후미부분에 만들어진 이층 침대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놀이터다. 다 자란 아이들이지만, 초등학교 어린시절처럼 서로 이층을 차지하겠다고 장난을 치며 신나게 놀았다.

자동차가 트랜스포머의 변신처럼 일순간 펜션으로 변했다. 캠핑장 주변에는 적당한 크기의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어 햇살 좋은 날 썬텐하기는 그만이다. 카라반마다 태양열 램프와 작은 정원 그리고 우드 데크, 야외테이블, 바비큐그릴이 준비되어 있어 바닷가에 지어진 내 작은 별장처럼 편안하고 아늑하다.


짐을 풀자, 아이들은 본능처럼 바닷가로 달려간다. 비가 그친 뒤의 해변에는 괭이갈매기들이 연신 바다지렁이를 탐하고, 먼저 온 사람들은 햇빛을 등지고 조개를 캐고 있다. 다, 그림이다.

아내가 관리실에서 호미 2개(인근 슈퍼에서는 2천원)를 빌려왔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갯벌을 파기 시작한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야, 조개다! 내가 잡았어." 환호하는 아이의 손끝에 조개가 매달려있다. 제법 큰 동죽이다. 이곳에는 주로 동죽과 백합이 잡힌다. 1시간 정도 온 가족이 매달려 조개를 캐니, 오늘 저녁 조개구이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바닷가를 뒹굴며 조개를 캐던 아이들은 금방 배가 고픈지, 그만 가자고 조른다. 하지만 아내는 조개 욕심 때문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자꾸만 호미질을 계속하고 있다.

귀 밑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 파도소리

관리실에 바비큐 준비를 부탁하니, 숯값 2만원을 받는다. 능숙한 솜씨로 숯에 불을 지펴주자, 환한 불꽃이 금방 피어오른다. 불을 피우는 동안, 아이들은 몸의 소금기를 씻어냈다. 머리에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숯불그릴로 모여든다. 집게를 들고 자신들이 직접 잡은 조개를 석쇠에 얹어 놓고 기대에 찬 눈초리로 응시한다. 오늘 메뉴는 돼지목살 소금구이와 아이들과 잡은 조개구이. 아이들은 조개를 굽고, 나는 고기를 구웠다. 아내는 준비해 온 음식재료들을 테이블에 펼쳐놓는다. 적당한 바닷바람은 고기를 노릇노릇 익히고, 아이들의 소리는 도란도란 밤바다에 퍼지며 파도를 적신다.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숯불에 잘 익은 고기와 소주 한 잔을 마시니, 꿀맛이다. 고기를 다 굽고 잦아드는 숯불에 집에서 가져온 감자를 묻어놓고 밤의 해변가를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오니 알맞게 익었다. 입가에 온통 숯검댕이 묻어도 포슬포슬하게 구워진 감자 맛은 달빛 비친 바다처럼 환상이다.

한풀 꺾인 더위와 시원하게 내린 비 끝의 공기는 유독 맑고 신선하다. 멀리 구름 사이로 별도 반짝이니 더할 나위없는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이들은 쉬이 잠들려 하지 않고, 침대 머리맡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잠이 절로 든다. 침실 창가에는 끊임없이 바람이 부딪힌다. 새벽녘, 찬 기운이 감돌자 부스스 일어나 전기보일러를 틀었다. 바닥이 금방 뜨끈해지니 안온함이 더욱 진해진다. 샤워실의 온수장치와 실내 난방시설은 비교적 잘되는 편이다.

새벽 바닷가 산책길, 꿈의 길

눈을 뜨니 몸이 개운하다. 순일한 아침이다. 카라반 차문을 여니,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구릉의 완만한 섬들이 선명하다. 보약이나 다름없는 공기를 마시며 맨발로 걷는 아침 바다 산책길은 그지없이 가볍다. 밀려드는 바닷물에 도열해 있는 괭이갈매기와 그들 속에 무리처럼 섞여 조개를 캐는 노인부부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조개 캐는 재미가 좋은가 봅니다."

"아들네와 여행을 왔어요.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요. 심심하잖아요. TV를 틀자니 잠을 깨울 것 같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쫓겨나왔어요. 조개는 그냥 캐는 거지 뭐."

사람이 빚어내는 풍경을 굳이 들여다보면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토 카라반'에서 5분 거리에 몽산포구가 있다. 새벽에 잡았다는 자연산 농어회를 떠왔다. 덤으로 얻은 우럭 머리와 매운탕으로 아침을 마쳤다. 휴가철이 지난 탓인지, 곳곳에 걸린 현수막에 '우럭, 광어회 1kg에 15000원'이라고 걸려 있다. 농어는 조금 비싼 1Kg당 25,000원에 거래된다. 조개구이용 조개는 1Kg에 만원이다. 오전 11시까지 퇴실이다. 짐을 모두 챙기고 난 뒤,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직도 멸치냄새가 나니?"

"어, 이젠 멸치냄새가 사라졌네?"

하루만 지나도 사람의 몸은 주변의 자연에 절로 동화되나보다. 점심으로는 태안의 명물 '게국지'가 괜찮다. 들깨향이 진해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통통한 굴이 많이 들어 있고, 새우 등 해산물이 풍부해 먹는 재미가 좋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여행 팁

-게국지 맛집 / 딴뚝통나무집 (041)673-3340

-오토카라반 / 1박2일 22만원, 홀리데이파크(www.holidayparks.kr), 상담센터 02)555-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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